▶ ■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LACMA에 기증
▶ 수십년 우여곡절 거친 작품, 원 소유주 후손이 내놓아, 성녀의 얼굴엔 `천상의 미’… 250만~300만달러 가치
라크마 유럽미술 갤러리에 걸려있는 베르나르도 스트로치의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
LA카운티 미술관(LACMA)에 새로 걸린 바로크 회화 한점이 미술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달 25일 아만슨 빌딩 3층의 유럽미술 갤러리에 처음 전시된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St. Catherine of Alexandria). 1615년 이탈리아 제노아의 화가 베르나르도 스트로치(Bernardo Strozzi)가 그린 대형 초상화로, 가치는 250-3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나치에 의해 약탈된 후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발견돼 원 소유주의 후손에게 반환됐는데, 작품을 돌려받은 필리파 칼난(Philippa Calnan)이 받은 즉시 라크마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LA 타임스에 의하면 전쟁시 강탈당한 개인소유 미술품이 반환과 동시에 박물관에 기증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유는 보통 상속자가 여러명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품은 결국 팔려서 소유권 분쟁 해결에 사용되곤 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의 경우 칼난이 원 소유주의 유일한 직계후손인데다, 그녀 자신이 라크마와 게티 재단에서 공보부 디렉터로 오랫동안 일하다 은퇴한 사람이어서 박물관에 대한 신뢰, 작품의 적절한 복원과 보존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는 그런 특별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그림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색상과 명암의 사용, 붓의 터치가 바로크적이면서도 현대감각이 느껴지고, 성녀의 얼굴은 신비로운 천상의 미를 표현하고 있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작품이다.
스트로치가 30대 초반 전성기에 그린 이 그림은 당시 종교개혁 물결에 위협을 느낀 가톨릭교회가 순교자의 고난과 승리를 미화시켜 대중의 신심을 붙들려는 목적으로 수주한 것으로 알려진다. 카타리나 성녀는 4세기 로마에서 참수당한 순교자로, 순결과 흔들림 없는 믿음, 높은 학식과 언변으로 중세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성인이다.
이 작품은 1890년 이탈리아로 이주한 미국 부호 찰스 A. 로저의 소유였다. 그는 1928년 사망할 때까지 유럽의 많은 미술품을 소장했으나 그의 사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고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로저 가족(아내, 딸, 사위, 손녀)은 수많은 미술품을 남겨놓은 채 이탈리아를 떠났다. 플로렌스 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위치해있던 로저가 저택은 나치가 점령해 군사령부로 사용했으며, 1944년 4월 문제의 그림이 사라졌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작품은 줄곧 나치강탈 예술품 목록에 올라있었다. 그러나 그 존재를 처음 드러낸 것은 2008년 비엔나에서다. 소더비는 경매 의뢰를 받은 작품을 확인하던 중 나치 약탈품임을 발견하고 이탈리아 경찰과 로저의 손녀 칼난에게 연락했다.
작품을 갖고 있던 사람은 국제미술상인 마르코 뵈나와 파브리치오 모레티였으며 이들은 2006년 ‘오픈 케어’라는 미술감정기관으로부터 45만유로에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경매에 내놓을 때까지 나치약탈품임을 전혀 몰랐다는 이들은 오픈 케어로부터 보상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작품을 찾은 후에도 미국의 칼난에게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이탈리아 법정이 국보급에 해당하는 작품의 해외반출을 허락지 않았기 때문. 칼난은 그에 상응하는 르네상스 미술품 콜렉션을 플로렌스 시에 기부하고서야 돌려받을 수 있었다.
400년전 그려진 바로크 미술의 걸작,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크마에 안착한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는 세월과 풍상의 흔적이 거의 없이 편안해보인다. 우리가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내어준 칼난 로저 여사에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