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 어릴 적부터 실수를 하는데 그 실수를 일깨워 주는 것은 어른들인 부모, 선생님 등이다. 어른들의 인생의 연륜은 어린아이의 길을 이끌어주고 실수를 일깨워준다. 모든 젊은 사람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나이가 많아도 어른 구실을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또한 성경은 어른같이 되라고 하지 않고 어린아이같이 되라고 한다. 잠언은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다”라고도 말한다.
젊은이들 가운데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현명한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제갈공명이 융중대를 말할 때 20대 초반이었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질 때는 10대였으며 예수님은 삼십대 초반에 공생애를 하셨다. 어른이 되면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만 줄어들 뿐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지도자가 되면 이 어쩌다 있는 실수는 어린아이 때와 같지 않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범죄하고 실수하면 질책하는 자들이 있어야 한다. 기윤실은 교회에서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가 어른이고 원로이신 한국교계의 어른들을 질책할 수 있겠는가? 담임하는 교회, 교단들 모두 말을 아끼고자 할 것이다. 참다운 어른은 웃어른의 질책 뿐 아니라 아랫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동화에서 어린아이에게 비친 임금님은 그저 벌거숭이 임금님일 뿐이다. 순수한 어린이의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어른들이 귀 기울이자.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칠 때 깨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