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 속 기기들

2013-12-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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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원정 / UC 버클리

언제부터 우리의 삶에 각종 기기들이 큰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처음 사들고 오신 노트북은 투박하고 무거웠지만 분명 어렵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물건이었다. 컴퓨터는 아무렇게나 다루어선 안 될 기기였고, 어머니의 핸드폰을 실수로 떨어뜨렸던 그 순간 심장이 쿵 하며 엄청난 두려움이 밀려왔었다.

그러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 될 삶의 필수품들이 되어 있었다. 현재 내 대학생활에서 절대로 빠져선 안 될 생필품은 노트북이다. 이 기기가 내 대학생활을 어떻게 조종하는지는 몇 주 전 지극히 ‘인간’적인 실수 덕분에 깨달았다.

도서관, 카페 그리고 강의실에서 언제나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많이 봐서일까, 기계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희미해졌고, 긴장을 늦추었던 그 순간 나는 노트북에 물을 쏟고 말았다.


내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노트북 등 기기들의 희소성이 낮아지면서 조심성 역시 함께 낮아졌다. 나는 단순히 노트북 수리를 맡기고 수리 기간 동안은 연필과 종이로 필기를 하고 에세이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손으로 에세이를 쓰는 것은 생각보다 큰 난관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손이 충분히 빠르게 종이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금방 나를 지치게 했고,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쓰는 학생들이 부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돌려받았을 때 더욱 더 원활한 대학생활을 위해 수많은 전자기기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기들을 중심으로 내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노트북의 주인이 맞을까? 아니면 기기들이 내 삶을 조종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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