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하순은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시간이고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조금은 이른 시간이다. 그래서 애매하다.
어쩌면 11월은 인생 60대처럼 애매하다. 서둘러 문을 닫기에는 어딘가 허전한 과수원 같다. 빗장을 지르기에는 기력이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정색을 하고 시도하기엔 늦었다는 예감이 있다. 그래서 조금은 슬픈 달력이다. 마치 하루가 다 가는 길목에서 서성이지만 아직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아쉬움을 준다. 11월이 그렇다.
그러나 11월은 한 해의 마무리에 집중해야하는 계절이다. 12월로 성큼 들어서기 전에 봄과 여름을 믿고 하늘 보기를 게을리 했던 삶을 깊이 관조하며 그나마 촌음을 아껴 사색하고, 더 많은 자기 성찰로 옷깃을 여며야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질 수도 있다. 누가 무슨 말만 하면 눈물이 나올 수도 있다. 공연히 화가 나고 공연히 허무하고, 그러므로 더 사랑하고 싶고 더 주고 싶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그 11월조차 그대로 그 벽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날보다 더 빨리, 다른 달보다 더 매몰차게 11월은 지나가므로 11월이 비록 애매한 날들이라 할지라도 그 한 달을 두 달이나 석 달처럼 길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11월이 애매한 것은 왜일까. 만추의 끝자락과 엄동설한의 입구에 걸림돌처럼 놓여 있어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에 몰두하노라 거추장스런 11월의 공허를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황혼을 저만치 보고 사는 사람이 더 짙은 인생일 수 있건만 사람들은 11월 앞에 서 있는 얼굴들에게 쓸어 담은 낙엽을 던져버리듯 고독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11월의 아픈 날들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말이 기억난다.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다만 그 기회를 붙잡지 않았을 뿐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막 떠나는 열차에 올라타듯 11월을 붙잡고 있는지 모른다.
11월, 그 애매한 달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애매함을 깨닫는 순간, 벅찬 생의 의욕과 소망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하리라. 아는가. 삶의 목표가 있다면 어떤 장애물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목표를 거의 모든 사람들이 1월이나 2월, 또는 약동하는 청춘의 때에 알지 못하고 11월에 와서야 겨우 알게 된다는 것을.
하여 추상(秋霜)의 가을 서리가 11월에 비롯되듯, 인생 역시 온갖 미적거리고 애매했던 궤적에 대한 추상같은 결단을 오히려 11월 속에서 기대함이 옳을 듯하다.
신석환(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