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선물

2013-09-1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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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

석양에 비낀 단풍잎이 고운 별무늬를 이루고, 꽃밭 담장 넘어 펼쳐있는 숲속의 아름드리나무에서 빨간 단풍잎이 뒤뜰에 떨어지며, 후드득 떨어지는 도토리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다람쥐가 두발로 서서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9월이 오면, 몇 년 전 정열을 불태울 나이에 그의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요절한 나의 큰 아이가 뼈 속 깊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돌이켜 보면, 큰 아이는 매사에 활동적이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백악관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직원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한 지적이며 사교적이었다. 나의 친지나 선배들은 아들을 낳으면 호랑이처럼 자식을 강하게 키워야한다 라고 충고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 옳다고 여기며, 자립심이 강하고 훌륭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일을 그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해결하게 했다. 그런데 큰 아이가 갑자기 중병으로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이었다. 자존심이 강한 큰 아이의 능력을 믿고서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며 건강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해준 것이 한이 되어 오늘도 나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힌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큰 아이를 먼저 보내며 새카맣게 타버린 내 가슴의 고통을 이 세상 그 어떤 이의 슬픔과 비교할 수 있을까. 스산한 바람이 좋은 저녁 무렵, 나는 뒤뜰에 나와 꽃밭을 손질하고 있었다. 뭔가 나의 등 뒤로 인기척이 있어서 돌아다보니 약학대학원에 입학한 작은 아들이었다. 내일 강의에는 손목시계를 가지고 혈압을 재기 때문에, 손목시계를 가지러왔다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부탁하여 서랍 속에 고이 보관중인 시계를 가져오도록 했다. 이 시계는 큰 아들이 동생의 생일 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나는 작은 아이를 불러 세워 그의 손에 내가 준비해 두었던 그의 형에 대한 간절한 나의 마음이 담겨있는 편지 한 장을 쥐어 주었다.

“사랑하는 작은 아이에게. 아빠는 네 형이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형의 영혼을 뒤뜰에 있는 꽃밭 속으로 옮겨 놓았다. 매일 아침 꽃밭에 나가서 네 형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는 네 형이 외로울까봐 꽃밭 한 구석에 새로 자라나고 있는 어린 노란색의 국화 두 그루를 옮겨서 네 형의 영혼이 묻힌 무덤 양쪽에 심어 주었다. 무덤 바로 앞에는 이른 겨울까지 피는 키가 작고 하얀 색깔을 한 꽃이 피는 ‘아프리칸 국화’ 세 그루를 나란히 심었다. 이제 머지않아 이 국화꽃들이 만발하면, 그 화려하고 노란 국화꽃의 꽃망울 속에서 너의 형이 배시시 머리를 내밀고 나와 나를 바라다보며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줄 것이다. 아빠는 아마도 이 순간을 위하여 나의 꽃밭을 정성껏 가꾸고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나의 작은 아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한 평생은 영원 속에선 너무나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 형이 네게 준 귀한 선물의 뜻을 마음속 깊이 담아서 형의 몫까지 멋있게 살기 바란다. 나의 착한 아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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