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운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바퀴에 달린 프로메테우스를 12명의 코러스가 위로하고 있다. <사진 CalArts>
‘프로메테우스 바운드’는 신화와 비극이라기보다는 존재와 운명, 힘과 폭력과 예지에 대한 여러 관점의 고찰이라 해도 좋겠다. 거의 무대에 올려지지 않는 희곡이라는데, 특별한 아이디어로 우아하게 엮어낸 트래비스 프레스턴 예술 감독의 연출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프로메테우스는 1시간15분 공연시간 내내 높이 23피트에 5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철제바퀴에 매달려 있다. 인류를 어둠에서 구원한 영웅이요, 압제자 제우스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반란의 화신 프로메테우스가 철제바퀴에 두 팔을 벌리고 묶여 있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어쩌면 무대 한가운데 버티고 선 이 철제바퀴가 연극의 가장 큰 캐릭터요 중심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시간, 우주, 운명, 카르마, 윤회… 아니 무엇이든 상징할 수 있는 이 바퀴에 프로메테우스는 물론 12명의 코러스와 이오가 올라타고 내리며 극의 전개를 긴장감 있게 엮어나간다. 원형극장의 계단을 입체적으로 이용해 관객석과 일체감을 이룬 것도 신선한 시도였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비니 골리아와 엘렌 라이드의 오리지널 음악. 주로 타악기를 사용해 신비하고 명상적인 리듬과 재즈 스타일의 사운드를 현장에서 직접 연주하는데 그 음악이 철제바퀴 만큼이나 특별하고 절대적인 효과를 창조한다.
내용은 산에 묶여 있는 프로메테우스와 그를 찾아오는 자들(크라토스, 헤파이스토스, 오케아누스, 헤르메스, 코러스, 이오)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룬다. 12명의 코러스는 통일된 노래와 대사, 움직임을 보여주며 시종일관 극의 배경을 받쳐주고, 바람둥이 제우스 때문에 흰 소가 돼 버린 이오가 나타나면서 제우스의 희생자들인 두 주인공의 고통과 분노는 절정에 달한다.
칼아츠(CalArts)의 CNP 극단 작품인 이 연극에서 프로메테우스 역은 베테런 배우 론 세파스 존스가 맡아 억눌린 분노의 연기를 훌륭하게 보여주고, 이오 역의 머자나 조코빅도 가련한 여인의 절규를 아름답고 호소력 있게 연기한다.
연극을 보기 전에 ‘프로메테우스 바운드’의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천병희)을 모두 읽고 갔는데도 그 아름다운 시어들을 다 알아듣지 못했던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과 고어, 시적 표현들이 난무하기 때문인데, 그래도 전체적인 흐름과 함께 세트와 연기와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2,500년 전 쓰여진 희곡을 현대의 공연무대에서 감상하는 경이로움, 그것도 당시의 귀족 저택을 모방해 복원한 게티 빌라의 원형극장에 앉아 말리부 산속에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얼굴에 느끼며 감상하는 그리스 비극은 늘 반복되지만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들, 이 가을의 전령사와 같다.
‘프로메테우스 바운드’는 9월28일까지 매주 목·금·토요일 오후 8시 공연된다.
티켓 38~42달러. www.getty.edu, (310)440-7300
게티 빌라 17985 Pacific Coast Hwy. Pacific Palisades, CA 90272
<정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