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 내고 싶지 않은 불청객
2013-09-05 (목) 12:00:00
난 늘 뭔가 즐거운 일이 있을 것 같은 착각으로 세월을 보낸다. 달라질 것 없는 하루를 몇 달이나 몇 년씩 보내면서도 그 착각은 계속된다. 동녘이 밝아 오고 채 익지 않은 태양이 산등성이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 빛은 찬란하게 빛나지만 눈부심이 덜해서 편안하다. 하늘도 산도 나무도 아스팔트도 아직 설익은 연노랑 햇살과 만나 한 폭의 유화처럼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다. 하루 중 가장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 좋은 시간이다. 순하게 퍼져 있는 연노랑 햇살과 그 햇살 아래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뭔지 모를 야릇한 기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짧은 순간 냄새처럼 스며드는 그 색다른 느낌을 희망이나 기대감 정도로 큼직하게 이해해도 되는지 혹, 신선한 아침 정취에 잠깐 취한 여린 마음을 곡해하는 건 아닌지 정말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침을 먹는 일이고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뿐인데 눈치 없이 들어오는 그 기분 좋은 혼돈을 그래서 착각이라 부르는 수밖에 도리 없다. 구체적일 수도 형체를 알 수도 없는 놈이라 호되게 물리칠 수도 없이 넘긴지가 몇 년이다. 모른 척 받아들이고 아예 대접을 해 온지도 오래지만 그렇다고 하루가 달라지거나 꿈 같은 일이 벌어지는 날도 물론 드물다. 몸 좀 어지간히 추스르면 한국에 휑하니 나가서 보고 싶은 사람들 좀 만나고 와야지. 한 여름 다 가기 전에 바닷가에 가서 그렇게 많던 소라랑 조개 좀 언니들이랑 잡아 봐야지. 언젠가 바닷가에서 구워 먹은 그 맛, 그 기분은 우리만 아는데. 한 걸음에 달려가서 우리 딸 좀 만나야지. 곱게 단장하고 아침 일찍 딸이랑 나가서 따뜻한 커피에 베이글 먹어야지.
아뿔싸! 연노랑 햇살이 가져 온 정체 모를 혼돈은 이제 보니 지독하게 그리운 삶의 조각들이었구나. 조각조각이 모이다 보니 가슴까지 그렇게 뭉클하였구나. 달콤하게 파고드는 착각 속에서 아침은 시작되고 또 다른 평범한 하루가 무심하게 지나가지만 그토록 화사했던 아침의 불청객이 언제쯤 떠나는지 크게 상관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묵직한 어둠이 소리 없이 내리고 세상천지가 눈을 감을 때면 허무하게 보내 버린 또 다른 하루에 맥이 빠지고 아침에 자리 잡았던 착각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제 몫을 다하고 시커먼 옷자락을 여미고 빠져 나가기 전까지는 감히 착각은 존재조차 까마득하다.
산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연노랑 햇살이 유리창을 기웃거릴 때 절대 처음일 리 없는 그 염치없는 존재는 조심스레 내 마음 속에 다시 자리를 잡는다. 밀어 내고 싶지 않은 아침의 불청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