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담보대출 때문에 매월 수백만원의 이자납부에 허덕이는 전형적인 하우스푸어인 L씨. 그는 전세를 놓고 있었던 서울 서초동의 전용면적 85㎡ 아파트를 지난달 초 전세계약 갱신을 앞두고 급매로 중개업소에 내놓았다가 지난주 다시 거둬들였다.
세입자가 계약을 갱신하면서 L씨의 요구대로 전세 값을 7,000만원 올려줬기 때문. 그는 이 돈으로 담보대출 일부를 조기상환했다. L씨는 “혹시나 했지만 예상한 것 이상으로 전세금을 올려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며 “집을 급매로 팔아 손해를 보느니 당분간 보유하면서 시장 추이를 지켜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아파트 급매물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하우스푸어의 주택 등 적지 않던 급매물이 눈에 띄게 줄었다. 15일 만난 개포주공5단지 인근 B공인중개소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시세보다 4,000만~5,000만원이 낮게 나오는 급매 물건은 금세 거래가 되지만 물건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놓고 전문가들은 식을 줄 모르는 전셋값 급등세를 주목하고 있다. 전셋값이 폭등 추세를 거듭하자 전세를 놓던 집을 이자부담 등으로 급매로 처분하려던 집주인이 이를 다시 거둬들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재계약을 할 때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올려 받을 수 있는 전세보증금으로 대출까지 갚아버리면서 집을 급매로 팔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B공인 관계자는 “85㎡ 평형의 경우 많게는 전셋값이 6,000만~7,000만원까지 올려 받아 이 돈으로 대출 일부를 갚은 집주인들이 매매 의사를 접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거래가 가능한 가격의 중소형 아파트 물건들이 종적을 감추면서 ‘거래절벽’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또 일각에서는 급등한 전셋값이 매매가의 추가하락을 막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집값의 마지노선을 전세가격과의 적정한 차이로 보는 집주인들이 많기 때문에 전셋값 상승이 집값 하락폭을 둔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9일 현재 서울지역 매매가는 지난해 말보다 1.77% 떨어졌다. 2012년 1년 동안 집값이 5.79% 떨어진 것에 비하면 하락폭이 줄어든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집값 하락폭을 둔화시키는 한편 보증금 인상분으로 대출을 갚으며 매매시기를 늦추는 묘한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며 “전세가격 급등에 따른 임대차시장의 불안정성이 매매시장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