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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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자들(4)

2013-07-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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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철강 왕 카네기와 스탠더드 오일을 모기업으로 하는 석유산업으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록펠러에겐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1830년대후반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겪었을 때 낳고 성장했다. 그리고 주어진 기회를 잘 잡았다. 그들이 10대일 때는 미국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꿈을 펼치도록 자극한 시대였다.

미국 곳곳에 은행이 들어서며 금융이 발전하였다. 강에는 증기선이 오르내렸으며, 철도가 개통되어 물자이동이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농업국 미국이 공업국으로 변신을 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20대일 때는 남북전쟁이후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으로 공업화가 진행됐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맥이 발견되자, 9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지의 땅인 서부가 개척되며 철도와 같은 교통의 발달을 이끌었고, 미국에 전국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네기와 록펠러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중에 그들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존 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었다.


JP 모건 & Co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융기업 중 하나이다. 현재의 JP 모건은 체이스 맨해턴 은행, JP 모건, 뱅크 원, 베어스턴스, 워싱턴 뮤추얼 등 기존미국의 여러 은행 간의 합병을 통해 형성되었다.

2조달러에 달하는 자산 총액으로 미국 금융업계 최대의 은행이다. 오늘날 JP 모건은 뱅크 오브아메리카, 시티그룹, 웰스파고와 함께 미국의 4대은행으로 불리고 있다그리고 모건은 금융 이외에철도, 철강, 통신, 영화 등 미국의 핵심 기간산업 부문에서도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해 온실물경제의 막후실세였다. 초거대 철강기업 US스틸 등 거대 트러스트가 그의 손에서탄생했다. 제너럴 일렉트릭, 듀폰, A&T 등 미국의 거대기업설립을 주도했거나 그들의 주거래 은행이다.

그리고 JP 모건은 주로 인수와 합병을 통하여 미국 내 자본의 40%를 컨트롤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수합병을 통한 트러스트를 만든 배후인물로, 선의의 경쟁을 막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위기 때마다 중앙은행 역할을 하며 미국의 경제를 살려낸 금융가라는찬사도 받았다.

1837년 뉴욕 인근의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난존 P. 모건은 1630년대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 미국 매서추세츠주로 옮겨온 이민자의 후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에 이르러 모건 집안은 보험업과 부동산 투자, 고리대금업으로 상당한 부를 이루었다. 그의 아버지 J.S. 모건은 국제적으로 이름난 은행가였는데 미국의 대륙 간철도회사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유럽시장에서조달하는 채권 중개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아버지 일을 돕기 위해 금융계에 진출한 모건은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사업가 기질을 발휘한다. 아들은 JP 모건상사를차린 뒤, 화약제품을 생산하고있던 뒤퐁과 손잡고 총과 군화를 북군에 팔았다. 불량 총과군화를 비싼 값에 팔아 전쟁이끝난 뒤 의회의 조사를 받기도했으나 모건은 전쟁과정에서엄청난 부를 축척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은행까지 JP 모건상사에 합병시켰다. JP모건시대가 본격 개막한 것이다.


1907년이 되자 증권시장을 주도했던 철도회사들이 과도한 경쟁으로 실적이 나빠지면서 철도의주가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금융기관들의 신용상태가 나빠지자 금융시장은 더욱 큰 압박에 시달렸다. 그러자 은행의 파산으로 돈을 떼일 것을 불안하게 여긴 사람들이 예금을 인출하려고 몰려와맨해턴 은행가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자 자금에 문제가 없던 은행마저 휘청거렸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는 중앙은행이 없었다. 위기에 빠진 은행에 현금을 곧바로 투입해 인출사태가 금융회사 전체로 파급되는 것을 막는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없으니 정부가 할 수있는 일은 사태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금융위기에 휘말린 온 미국의 눈길이모건은행으로 집중됐다. 그때 모건은 주요 은행의 소유주들과 협력해 금융기관을 파산위기에서 살려냈다. 또한 뉴욕증권거래소가 장을 열만한 자금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모건은 즉시 뉴욕의 은행장들을 불러10분 안에 2,500만달러를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2분 뒤 자금이 마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증권거래소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위기가 진화되지 않는다면 기업 도산이잇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럴 경우 그가 인수와합병으로 일궈 놓은 트러스트는 치명타를 입게된다. 모건의 노력으로 금융위기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의 금융관리 능력이 국가를 위기에서 구했다. 결국 미국은 6년 동안 복잡한 정치권의 협상과정을 거쳐, 1913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ederal Reserve System)를 창설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지금도 미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을 때 JP 모건은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 금융위기로 월스트릿이 휘청거릴 때 JP 모건은 구원투수 역할을 하여 투자은행 베이스턴스가 쓰러지자 곧바로 인수해 시장을 진정시켰다.

세계 최대 보험사인 AIG가 휘청대자 미 정부는 JP 모건에 AIG 인수를 간청했으나, 정부에게즉각 AIG를 국영화할 것을 조언했고 정부는 JP모건의 조언에 따랐다.

JP 모건은 설립자가 그랬던 것처럼 물밑에서월스트릿 붕괴를 막은 것이다. 모건이 세상을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은 여전히 금융계의 막후 실세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213) 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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