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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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메리의 평화

2013-06-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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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애연 / 새크라멘토

암 전문 약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젊은 나이였고, 아이들도 어려서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암 말기 환자들의 시한부 진단 소식을 들으면 참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환자는 진단을 부인하고 절대 암에 지지 않겠다며 필요 이상의 치료를 받는다. 또 어떤 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를 받아들이고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는다.

일부 환자들은 암 발병이 마치 타인 때문인 것처럼 화를 내며 발버둥 친다. 또 어떤 환자들은 믿지 않았던 신을 찾기 시작하거나 잃었던 신앙을 회복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는다. 믿는 신을 따라 천당이나 극락에 가겠다는 환자는 드물다. 투병을 하더라도 이 세상에 머무르고 싶다는 본능을 보인다.


그중 60대 중반의 조용하고 우아한 환자였던 로즈메리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어느 날 한 간호사가 “방금 로즈메리가 의사 방에서 나왔는데 이제 2달 남았대” 하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처음 들어본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 정원을 지나칠 때 그 여인이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다가갔다.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로즈메리, 미안해”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환한 미소로 올려다보며 “괜찮아, 나는 내 아버지 집에 갈 준비가 다 되었어”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날 그의 평화롭고 편안한 모습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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