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리아의 비극

2013-05-0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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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 경 훈 논설위원

역사는 대체로 느리게 흘러가지만 때로는 뜻하지 않은 작은 사건 하나가 그 흐름을 바꾸고 급류로 돌변하게 만든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가 그랬다. 동독인 몇 명이 인근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로 건너가 서방으로 망명을 시도했을 때만 해도 이것이 거대한 역사적 변혁의 시작임을 안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열 명이 되면서 1945년 2차 대전 종전 후 동유럽 전역에 걸쳐 굳게 쳐졌던 ‘철의 장벽’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독 경비대는 시민들이 브란덴부르크 게이트를 통해 서독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관했고 동서독을 마음 놓고 넘나들 수 있게 된 것을 안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수십 년 간 동독인들에게 공포와 저주의 대상이던 베를린 장벽은 순식간에 무너져 역사의 유물이 됐고 그와 함께 동유럽의 공산주의 지배도 끝났다.

몇몇 동독인의 탈주 러시에서 시작된 역사적 물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 이어 독일은 통일되고 공산 종주국 소련이 해체됐으며 전 세계 공산당의 원조인 소련 공산당이 러시아에서 불법화 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2010년 12월 튀니지아의 한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시 당국의 부당한 단속에 항의하며 분신자살 했을 때도 그랬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체제 변화가 아랍 전역에 번지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후 불과 한 달 뒤인 2011년 1월 튀니지아의 벤 알리가 물러나고 2월에는 이집트의 무바라크와 예멘의 살레가 쫓겨났다. 같은 2월 리비아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으나 카다피만은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반군에 맞서다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이로써 중동의 오랜 독재자들은 상당 부분 제거됐으나 아직까지 물러서지 않고 있는 인간이 있다. 바로 시리아의 바샤 알 아사드다. 2011년 3월부터 지금까지 2년 넘게 계속된 내전으로 7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00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의학 공부를 한 인물이란 이유로 30년간 철권통치를 하며 자신에 반기를 든 시리아 인 2만5,000명을 살해한 아버지 하페즈와는 좀 다를 걸로 생각한 사람도 있었으나 이것이 헛된 희망이었음을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아사드 집안이야 원래 그런 인간들로 치더라도 장기화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오바마다. 그는 시리아 정부군이 민간인을 대량학살 할 때마다 “아사드는 가야 한다”고 외치기만 할 뿐 이를 실현시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최근까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 무기 사용을 넘지 말아야 할 금기선인 “레드 라인”으로 불렀다가 독가스 사용이 확인되자 “누가 언제 어떻게 사용했는지 더 조사해 봐야 한다”고 말을 흐렸다.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독가스를 뿌렸다면 글쎄 누가 그랬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백악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가스 사용을 “레드 라인”으로 규정한 것은 “실수”라고 밝혔다. 대량 살상 무기답게 대량으로 국민을 죽여야지 몇 명 정도 죽이는 것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명부터 “대량”인지가 문제인 모양이다.

오바마는 리비아 내전 때도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증오하는’ 프랑스가 앞장서 반군을 도울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프랑스가 나서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다. 이 와중에 평화적 반정부 시위로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더욱 처참해지고,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알 카에다와 헤즈볼라 같은 테러 조직이 반군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반군에 무기를 대주기도 안 대주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 버렸다. 아사드가 물러난 자리를 이들이 차지하게 될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 여러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대통령인 테디 루즈벨트는 “말은 조용히 하되 몽둥이는 큰 것을 들고 다니라”는 충고를 남겼다. 오바마는 말은 크게 하지만 몽둥이는 찾아 볼 수 없다. 시리아 사태가 해피 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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