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굽이 높은 구두

2013-03-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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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중 /수필가

천지 가득, 봄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바야흐로 봄이 온 것이다. 겨울 내내 두터운 옷과 털신 속에 움츠러들었던 여인들은 봄을 맞으며 봄의 빛깔처럼 화사한 모습으로 자신을 연출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타주에 사는 언니가 부활절에 신을 구두를 한국제품으로 사 보내 달라는 전화를 하셨다. 부탁을 받은 나는 언니의 심부름꾼이 되어 동네 근처의 백화점들은 물론 한인타운 곳곳의 양화점을 돌며 온갖 모양의 구두들을 원 없이 구경했다. 그 많은 구두 중에서 사이즈, 디자인, 색깔, 굽의 높이 등 언니가 원하는 것과 맞는 것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역시 인연이 있어야 되는 일임을 새삼 실감했다.


봄을 기다리는 것은 사람과 꽃들만이 아니다. 상가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도 봄을 기다린다. 다양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깔의 구두들이 저마다의 예쁜 모습을 뽐내며 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10센티가 넘어 보이는 높은 굽의 구두들이었다. 저걸 신고 어떻게 다니나 놀라웠으나 허리를 꼿꼿이 폈을 때 높은 구두로 부터 전해지는 당당함과 자신감을 주는 늘씬한 외모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애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굽이 높은 구두는 키가 커 보이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고귀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느끼려는 자기최면 같은 환상의 수단이 아닌가 한다.

마릴린 몬로가 ‘나를 성공의 길로 올려 준 것은 바로 하이힐’이었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하이힐은 여성들의 지지자 역할을 오래 전부터 톡톡히 해온 것이 틀림없다.
하이힐은 원래 화장실이 없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오물에 드레스가 더러워질까 신었다고 하고, 신분의 차이를 표시하기 위해 신었다고 한다. 신발 굽이 높으면 높을수록 귀한 신분을 상징함으로 한 자쯤 되는 신발을 귀부인들이 즐겨 신었고 높은 굽을 감추기 위해 스커트 길이도 길어졌다고 한다. 때론 넘어지기도 하고, 굽이 빠지거나 부러지는 등 예상치 못한 낭패를 당해 시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는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여성들이 늘씬해 보이기 싶은 욕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모양이다.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면서는 나는 하이힐을 신은 적이 거의 없다. 걷기에 자유로운 납작하고 편안한 단화만 신는다. 자연 하이힐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으나 아직도 내 신발장 안에는 굽이 높은 구두가 여러 켤레 놓여 있다. 내 생전에 다시 신어볼 기회는 없겠으나 내 삶의 흔적, 내 체취가 느껴지기에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발은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고 활동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필요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양식과 같이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으로 우리 인간과 함께 해온 발자취이며 생애의 기록이다.

이 봄, 젊은 여성들이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활보하는 즐거움도 젊음의 흔적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구두의 역사, 인생의 역사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굽 높은 구두의 매력도 세월에 묻어야 할 때가 곧 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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