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 주지 못한 사랑, 안타깝습니다”

2013-03-0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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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스푼선교회 등 워싱턴 한인들 자메이카서 의료 봉사
현지 한국대사관·선교사·한국 기업의 협력으로 ‘기적’ 연출

‘미국에서 한인 한의사가 왔다...’
무료로 치료해주고 약재도 준다는 소문은 빨랐다. 간이 병상 3개와 테이블 2개로 다운타운 내 웨슬리교회 안에 진료소가 급조됐다. 각종 질병과 장애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원주민들과 한인 동포들이 몰려들었다. 한인 선교 봉사자들이 6박7일간 머물며 도움을 준 사람은 500여명.
워싱턴에서 도시 빈민들을 돌보는 굿스푼선교회(대표 김재억 목사) 관계자들과 유제운 한의사 등 한인 의료진이 단기선교 차원에서 자메이카 킹스턴을 찾은 건 지난 2월 16일. 겨울의 끝자락인 워싱턴과 달리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계속 되고 있었다.
워싱턴을 떠도는 일일 노동자들이 주로 사역의 대상이었던 굿스푼이 선교와 구제 사역을 중미까지 넓히게 된 건 이유가 여러 가지다.
우선 애난데일에서 ‘인내천 한의원’을 운영하는 유제운 한의사(57)의 라틴 아메리카 의료 봉사가 이번 선교가 처음이 아니다.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났던 2011년 수십만이 압사 당하고 도시들이 순식간에 집단 난민촌으로 변한 참사 현장으로 왕진 가방을 들고 달려갔다.
유 한의사는 “당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몰려든 수백 명 환자들에게 놓았던 침이 세숫대야 가득 담길 만큼 많았다”며 “하루 500여명을 돌봤던 걸로 기억 한다”고 말했다. 선교에서 돌아온 후 그는 며칠을 끙끙 앓으며 휴식을 취해야 했다. 힘들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람을 얻고 온 그는 이번에도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자메이카 킹스턴 빈민 선교는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미주 국제기아대책기구 조미선 선교사와 주 자메이카 한국대사관의 특별한 협력이 없었으면 훨씬 어려울 뻔 했다.
워싱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다 2년 전 자메이카 대리대사로 온 임기모 대사는 조 선교사의 고군분투를 지켜보고 있었고 전부터 알고 있었던 굿스푼선교회를 불러 협력 선교를 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서 진출한 기업 YPP의 백종만 회장은 자메이카 복음화를 위해 선뜻 1만달러를 내놓았다.
IMF 사태 이후 불어난 거대한 채무를 갚지 못해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자메이카. 물가는 점점 올라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도시 치안은 갈수록 험악해지는 나라. 그 도심 한복판에서 자메이카의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한인 여성 선교사의 희생이 값진 열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조 선교사는 외동딸 샘빛(160과 함께 2007년부터 수고하고 있다.
임 대사는 “조 선교사의 선교 활동을 보며 한편으로 대견스럽고 또 안타까웠다”며 “한인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후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뼈대만 앙상히 남은 웨슬리교회는 150년 전 영국계 백인 농장주들과 가족들이 다녔던 교회였지만 지금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흉물스런 건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인 봉사자들이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면서 다시 인정이 흐르고, 웃음이 넘치는 ‘사람 사는 곳’으로 변했다.
교회 주변에서 몰려든 이들은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뤘고 십대 청소년부터 100세 노인까지 의술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환영받았다.
유 한의사는 “환자 대부분이 크고 작은 외상 후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 200여명의 환자들은 이렇게 유 한의사의 침과 부황, 뜸 덕분에 새 삶을 얻었다.
워싱턴 한인들의 봉사는 자메이카의 최대 일간지 ‘Observer’에 크게 보도돼 원주민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유 한의사는 “장기간의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도 많은데 그냥 돌아오게 돼 도리어 미안했다”며 더 주지 못한 사랑을 못내 아쉬워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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