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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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할머니… 아! 그립다!

2013-01-1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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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할렘 PS 57 초·중학교 과학교사)

지난 성탄절에 난 여동생 집에서 친정식구들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내겐 아주 귀여운 남동생의 늦둥이 막내 조카 진호(2세)가 있다. 나를 보면 "할머니"라고 부르며 웃는다. 내 쌍둥이 딸들은 "엄마, 진호가 엄마더러 할머니라고 했어"라며 깜짝 놀란다.

언뜻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친정엄마랑 모습이 너무나 비슷하다보니 진호는 나를 마치 자기 친할머니(내 엄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문득 외할머니가 그리워졌다. 평소 ‘외’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던 내게 할머니는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셨다. 수십 년 전 돌아가셨지만 뜨끈뜨끈 한 화덕에 밤을 구워우며 할머니 엉덩이 옆에서 흥얼흥얼 책을 읽는 내게 군밤을 까서 입에 넣어주던 정겨운 할머니였다.
봄에 산나물을 캐러 산에 올라가실 때마다 초등학생이던 난 할머니를 따라 갔다가 바구니에 잡초만 무성히 담아 할머니를 성가시게 하기도 했다. 겨울이면 낫과 칼로 만든 썰매를 타던 논두렁을 활개치던 정겨운 시골에서의 경험이나 여름이면 남동생이나 사촌오빠와 즐겼던 참새, 개구리 뒷다리, 메뚜기 구이까지 어린 시절 방학이면 시골 할머니 댁에서 놀았다.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들었던 한국전쟁과 일제시대 이야기까지 소중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며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사촌언니를 통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은주가 돈 많이 벌어서 미국에서 와서 나와 함께 살겠다고 했다"며 희망을 갖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수십 년 전 내가 한국에 있다가 다시 뉴욕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 밤을 할머니와 보내면서 ‘할머니, 내가 빨리 컷 돈 많이 벌어 할머니 모시러 올게. 우리 함께 살자!”며 했던 말을 기억하신 것이다.


할머니와의 옛 추억이 떠오르면서 새해에는 ‘희망’이라는 말로 출발하고 싶어졌다. 희망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해에는 너도나도 자그마한 꿈을 꾸었으면 한다. 이뤄지지 않은 꿈도 좋고 이뤄질 꿈도 좋고 어느 것이든 꿈을 꾸며 희망을 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그리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를 살리고 우주여행을 하는 거대한 꿈도 아니다. 그저 아픔이나 슬픔 없이 어제보다 조금 편하게 지내게 해달라는 기도, 어제의 불화를 다 녹여버리고 용서를 비는 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한다" 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오늘이 되고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런 소박한 꿈들 말이다.

내 학생들은 "Ms. J. Kim, You are the BEST science teacher ever"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어린 아이들은 그냥 누구에게나 베스트(best)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흔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학생들의 이런 칭찬을 들으면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지내게 된다. 그것이 전염이 되어 나 또한 학생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내 쌍둥이 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하루하루 매 순간을 기분 좋게 살고 싶어 새해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소박한 내 할머니께서 날 칭찬 하셨던 것처럼 소중한 내 학생들이 나에게 날개를 달아주듯이 나 또한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어린 조카 진호가 나를 보며 할머니를 연상하듯이 내 학생들이 훗날 성장한 뒤에도 "Ms. J. Kim"이라고 하면 아주 재미있고, 웃기고, 극성스럽고, 목소리 큰 과학교사로 기억하길 원한다. 그래서 여태 그랬듯이 학생들이 어서 자라서 시집 장가를 가서 나를 다시 찾아 왔을 때 내가 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를 찾아온 제자들이 학생들이 절실히 사랑하며 행동으로 가르친 푸근한 선생으로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할머니와의 옛 추억을 생각나게 해 준 귀여운 나의 조카 진호를 생각한다. 비록 어린 아이지만 "할머니"라는 한 마디로 날 행복에 떨게 한 내 어린 조카 진호를 생각하며 또 다른 희망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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