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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상업주의와 군중심리

2013-01-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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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퀸즈칼리지 화학과 교수·재미과학기술자 협회)

최근 커네티컷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총기사건은 가슴을 절이게 한다. 슬프고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왜 이런 일이? 그것도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작은 인권 문제만 있어도 목소리를 높이는 미국에서 말이다.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인터넷과 정보 혁명을 주도하며 의료과학과 기술에서 첨단을 달리지만 정작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무기력한 미국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총기소지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지만 총기소지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돼있고 3억정 이상으로 추정되는 총기가 이미 유포돼 있으며 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해볼 때 실효성이 있는 입법은 정치 사회적으로도 무척 힘든 싸움으로 보인다. 유일한 목적이 살상인 총기를 제한하는 것이 ‘자유’라는 명목 하에 이렇게 옹호되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일이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많은 미국인에게 남아있는 정부에 대한 불신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총기제작자들의 상업주의와 이윤추구를 위해 조장되는 군중심리도 큰 몫을 한다.


개척을 통해 이뤄진 미국에서 자기방어 수단으로 총기소지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미 미국의 총기소지는 그런 단계를 훨씬 넘어섰고 비현실적인 불안감과 폭력에 대한 환상을 갖고 대량 살상용 총기를 소지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공유되는 비뚤어진 영웅 심리와 안전에 대한 개념을 지탱해주는 폭력문화 역시 지나칠 정도로 일상적인 삶 속으로 파고들어 버렸다.

최근 몇 년 동안 일어난 끔직한 총기사고들은 모두 폭력과 살상을 가시화하는 영화와 게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았음은 그러한 동영상 매체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보여준다.시각처럼 우리의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찾기 힘들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디지털 영상이 이제는 쉽게 영화, 컴퓨터 게임,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너무도 안타깝게도 이러한 영상들 중 지극히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이윤을 남기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적절한 단계에서 그친다기보다는 더욱 더 폭력적인 영상으로 악순환이 계속된다. 성장과정의 아이들이 그러한 영상에 게임의 형태로 중독된다면 그러한 마음에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이성적인 판단력을 위한 충분한 자리가 남아있을지 의심이 든다. 더군다나 그러한 개인의 정신적인 편향이 어떤 한계를 넘어선다면 비극적인 일을 초래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현 상황의 미국에서는 어렵지 않다.
과학과 기술은 양날의 칼이라고 많이 얘기한다. 누가 쥐냐에 따라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의 과학기술인 경우 그 주체가 국가이기에 법적인 제도와 감시를 통해 잘못된 이용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가능하다. 즉 국가적 차원에서 절제와 통제가 있기에 긍정적인 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의 디지털 혁명은 다른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역량을 강화했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어느 때나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소셜 네트워킹을 통해 생각과 관심사가 필요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으며 각종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들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일반인들이 어려운 작업들을 수행하게 해준다. 하지만 의식적인 노력과 절제가 따르지 않는다면 이득보다는 폐해가 클 수도 있다. 디지털 마켓 곳곳에 이미 침투돼 있는 폭력적이고 외설적인 상품들을 멀리할 수 있는 절제력이 없다면 그리고 소셜 네트워킹에서 형성되는 잘못된 군중심리와 정보에 대한 분별력이 없다면 디지털 혁명은 오히려 개인적인 퇴보와 사회적인 위험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는 변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 매체를 통한 새로운 교육, 출판, 그리고 문제해결 방식이 개인과 사회적인 역량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보다 행복한 삶으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곳에 새로운 위험이 많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사주고서 방치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작아 보이지만 큰 문제의 씨앗이 되는 폭력적이고 불건전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고 현실과 격리된 비정상적인 가상의 세계가 널리 열려있기 때문이다. 절제와 판단력, 그리고 단순한 상업주의와 군중심리의 폐해를 피해갈 수 있는 현명함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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