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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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자폐아 양육기 뉴원조 (New Wonjo)

2012-12-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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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희 교사(언어기술아카데미(ALT) 교사)

오늘은 식당 자랑을 하나 해야겠다. 바로 맨하탄 한인 타운의 ‘뉴원조’다.
에반이와 뉴원조를 일주일에 한번 이상씩 꼭 들렸던 것이 벌써 수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에반이는 여러모로 감각치료가 필요했던 터라 맨하탄 미드타운에 위치한 치료센터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갔었다.

그 치료시간이 늦은 오후 시간대라 전날 밥을 해놓지 않는 날이면 신체적 고단함과 정신적 귀찮음으로 인해 집에 가서 저녁밥을 하기가 너무 아득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치료를 마친 에반이를 데리고 치료센터에서 가까운 한인타운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리곤 했었다. 바쁜 시간대가 아닌지라 시원하게 통유리로 비춰지는 한가한 모습에 마음이 놓여 처음으로 에반이와 뉴원조를 들어섰다.

이전에 맛이 좋다는 칼국수집에 에반이를 데려갔다가 워낙 빼곡히 들어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에반이가 칼국수 그릇을 계속 젓가락으로 둥둥 울리자 옆에 있는 아저씨가 숟가락을 던지며 아이 간수도 못한다고 밥맛이 다 떨어진다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나는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는 여간해서는 에반이를 데려가지 않는다.


자폐의 한 특징이 한 가지 행동을 지나칠 정도로 반복을 하는 것인데 에반이 경우는 특히 피곤할 경우에 반복적으로 일정한 소리를 들으려하는 성향이 있다. 노래의 한 구절을 계속해서 낮게 부르거나 전화기를 바닥에 대고 반복적으로 툭툭 치곤하는 것이 그 예인데 그날은 하필이면 칼국수 그릇의 둥둥거리는 반복적 리듬감이 에반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한가한 오후의 뉴원조에는 엄마 손에 달랑거리며 온 꼬맹이 하나와 삐죽하니 묶은 머리에 코끝에 내려오는 안경을 연거푸 올려대는 아줌마 하나가 음식을 시킨다. 음식이 나오자 이 아줌마는 자기 음식은 손도 못 대고 아이 먼저 먹이느라 정신이 없다. 결국은 자기 음식은 싸달라고 부탁을 한다. 계산하기 바쁘게 퇴근길 지하철 시간을 피해가려고 아줌마는 꼬맹이와 함께 후다닥 떠날 채비를 한다. 이러한 나와 에반이의 당시 모습이 뉴원조 식구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한 가지 그들에게 분명했던 것은 그 아줌마가 애 밥 먹이느라 자신은 먹지 못하니 무지하게 배고팠을 거라는 것이다. 그 철저한 배고픔을 이해했는지 어느 날 식당 식구 중 하나가 오더니 에반이를 자기가 먹일 테니 엄마도 밥을 먹으라고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한가한 오후 한 자락에 나는 에반이를 전혀 모르는 낯선 이와 도란도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그 도란거리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에반이의 자폐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냈다. 나의 아무렇지도 않음에 오히려 식당 식구가 미안해할 정도로 어떻게 답변을 해야할 지 몰라 난처해하는 친절한 모습이 기억난다.

이제 에반이는 젖살이 통통하게 올랐던 그 때에 비해 불쑥 큰 소위 말하는 ‘빅보이’가 됐다. 에반이는 이제 집중적인 감각치료의 필요성을 벗어나 사회성 발달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 녀석의 발달과정에 적합하기에 한인타운에서 가까운 치료센터는 더 이상 가지 않는다. 그래서 뉴원조를 가는 횟수도 부쩍 줄었다. 그때처럼 매주 들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에반이는 여전히 뉴원조를 기억한다. 음식을 못하는 엄마를 둔 탓에 맛난 한식이 그리워지면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뉴원조로 향한다.

식당이 가까워지면 녀석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벌써 맛있는 음식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뉴원조에 의젓하게 들어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뚝배기 불고기를 얌전하게 기다리고 음식이 나오면 이제는 혼자서도 예쁘게 밥을 잘 먹어준다. 엄마인 나도 냉면 하나를 여유 있게 먹을 수 있게 됐다.

예전처럼 매주 들리지 않지만 식당 식구들도 에반이를 기억한다. 한 전 매니저님을 비롯한 식당 식구들은 에반이를 보면 더 한 번씩 말을 걸어주고 더 한 번씩 녀석의 눈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그간 식당 식구들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에반이를 많이 알아봐주는 걸 보면 에반이에 대한 이야기가 식구들 사이에서 오간 모양이다. 아이의 자폐가 부끄럽지 않으나 또한 이를 굳이 말하고 싶지 않기에 남들이 어떻게 해서 아이의 장애를 알았을 때 왠지 불편하고 마음이 아프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에게 에반이의 자폐는 숨기는 장애가 아니라 에반이를 정의하는 한 일부이기에 나는 자폐를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어쩌면 사회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애를 지닌 에반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에반이의 자폐를 알아주어 한마디라도 더 해주고 한 자락의 배려라도 더 내보여주는 것이 엄마로서는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

물론 뉴원조는 내 자랑 없이도 장사가 무지 잘 되는 곳이다. 일단 음식이 정말 맛이 있다. 하지만 단골 자폐아 에반군에게 한결같은 웃음과 배려를 보이고 또한 갈 때마다 살짝 군만두 서비스를 내어주는 그 친절함 또한 잘나가는 비결의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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