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과 희망, 그리고 소원

2012-1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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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우리의 꿈, 우리의 희망, 우리의 소원이었던가?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곧잘 듣는 말이 “너,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크면 “네 꿈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을 들으며 장래의 포부를 진단하곤 했다.

이건 모두 남들이 나에게 묻는 말이었지만 어느 날 부터인가 스스로 희망이란 것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화려하고 잡다한 꿈을 들고 방황하기도 하고 고민을 하기도 하며 의기가 충천 할 때도 있는가 하면 한숨을 내 쉴 때도 있으면서 사춘기를 보낸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못하거나 나라가 가난하면 그 열이 심하기도 했다.

미국까지 와서 많은 세월을 보내고도 꿈과 희망을 되짚어 보는 사람은 별반 많지 않다. 만사를 포기한 사람들처럼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산다. 어떤 사람은 미국이란 나라도 다 그렇고 그렇지 ‘기회는 무슨?’ 하면서 살고, 어떤 사람은 살면 살수록 혹독해 지는 것이 미국의 선물이라 하면서 할 수 없이 산다.


처음부터 어려움이나 가난을 원한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불행을 원한 사람도 없다. 처음부터 슬픔을 안고 살길 원한 사람은 없다. 아무런 걱정이나 시름없이 편안하게 한 세상 살기를 누구나 마음속으로 원했다. 열심히 일만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란 의미도 모르면서 구멍가게를 차려놓고 대부가 되려는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서 온 종일 아이들을 남에게 맡겨놓고 나가 일하면서 아이들이 잘 크기를 바라는 부모들, 선생님의 얼굴도 모르면서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잘 해 나가기를 바라는 부모들 - 거기에는 이미 시름이 동반되고 있다.

돈도 자본이 되지만 지식도 노동도 잘하면 자본이 되는데 그런 것들을 자본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희망을 헛되게 버리고 일만하고 살게 된다.
자녀는 가정의 자본이다. 그 자본의 가치를 미국에서 사는 부모들은 한국의 부모들보다 멀리 두고 있어 아이들 돌봄이 형편없이 낮고 학교 선생님에게 들이는 정성이 낮다. 밥이나 먹이면 아이들의 성장이 저절로 완성 되는 줄 안다.

먹고 살만 하면 크게 성공을 거둔 듯 행세 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아이들 앞에서 무슨 꿈을 이루었다고 말 할 수 있으며 무슨 희망을 거두었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불평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배반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 인생을 보는 눈이 일관된 사람들, 잊지 않고 사는 사람들, 감사 할 줄 알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시름대신 깨끗한 소원이 항상 깃들어 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 지식보다 지혜로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자본이다. 소원이 있는 한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남북통일을 국시로 요구한 한때의 소원은 우리 인생의 소원이 아니다. 자식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 비는 어머니들의 소원이 작아 보이지만 인생의 참 소원이다. 계산에서 나오는 소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종교적 참 소원인 것이다.

그런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 졌을까? 아직도 어디에선가 누군가 빌어주는 그 기도에 답할 수 있는 소원이 정신없이 바쁘게만 사는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김윤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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