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적들! 오합지졸’의 휴 그랜트
▶ 태블로이드와 전쟁 같은 정치적 일에 관여하는데 요즘은 매우 바쁜 편 나이 먹으며 더 용감해져 좋다고 생각하게 되면 내 하고 싶은 대로 해
‘영국의 아드만 만화영화 제작사와 소니사가 공동으로 만든 스톱 모션 클레이메이션 입체 만화영화‘해적들! 오합지졸’(The Pirates! Band of Misfits)에서‘올해의 해적상’을 타기 위해 오합지졸 부하들과 함께 라이벌들과 맞서 싸우는 해적 선장 역을 음성연기한 영국 배우 휴 그랜트(51)와의 인터뷰가 지난 3월3일 라스베가스의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기디온 드포가 쓴 소설‘해적들! 과학자들과의 모험’(The Pirates! In an Adventure with Scientists)이 원작이다. 셔츠에 청바지의 허름한 차림에 다듬지 않은 머리를 한 그랜트는 과거보다 살이 쪄 보였는데 50 나이에도 아직 귀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선 한때‘제2의 케리 그랜트’라고 불렸던 멋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랜트는 눈을 깜짝깜짝하면서 약간 수줍어하는 식으로 유머를 섞어 질문에 답을 했는데 겸손해 호감이 갔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는 듯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렸을 때 즐긴 해적 얘기는 무엇인가.
-영국에는 당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해적에 관한 아동 서적과 TV 시리즈가 있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해적들의 이름이 ‘시맨 스테인’(발음상 정액 자국)과 ‘마스터 베이츠’(자위행위)처럼 얄궂어 논란거리가 됐었다. 그리고 ‘틴틴’도 즐겨 봤다.
*당신은 선셋사건(1995년 6월 그가 미국에 머무르고 있을 때 밤에 선셋 거리에서 창녀와 거래를 한 사건)을 비롯해 최근의 태블로이드와의 전쟁 등 사생활이 공인의 생활을 침해, 화제의 주인공이 되곤 했는데 가능하면 둘 사이의 거리를 멀리 두고 싶지 않은가.
-예스, 예스, 예스, 예스다.
*영화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세계 정상들과 함께 온갖 희한한 음식을 먹는데 당신이 먹어본 가장 색다른 음식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형이 코딱지로 만들어준 것인데 실제로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웃음) 그리고 태국에서 르네 젤웨이거와 ‘브리젯 존스’ 영화를 찍을 때 먹어본 바퀴벌레다.
*당신은 최근 영국의 악명 높은 태블로이드에 대항해 전면전을 했는데 전쟁이 끝났는가.
-아직 안 끝났다. 문제는 전화도청을 비롯한 개인의 사생활을 침입한 그들에 대해 법과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의 정부나 언론이 모두 보수적이어서 큰 기대를 걸진 않는다.
*영화에서 해적 선장은 ‘올해의 해적상’을 타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데 당신도 그런 적이 있는가.
-이 영화로 3년 만에 목소리로나마 스크린에 돌아왔듯이 난 현재 쇼 비즈니스와 소원한 처지다. 지난 번 오스카 쇼도 안 봤다. 쇼 비즈니스에 별 관심이 없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있겠는가.
*과거에도 그런 생각이 없었는가.
-내가 원한 것이 있었다면 조소와 경멸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그 바람이 이뤄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쇼 비즈니스로 컴백할 생각이 없는가.
-솔직히 말해 별 생각 없다. 이 영화처럼 내 환상을 자극시키는 것이 있으면 가끔 나오겠지만 대체적으로 난 지금 쇼 비즈니스에 개입 안 해 기쁘다.
*아직도 골프광인가(그는 스크래치 골퍼다).
-전보다는 덜하나 여전히 즐긴다.
*그럼 요즘은 뭘 하면서 지내나.
-태블로이드와의 전쟁과 같은 정치적 일에 관여하는데 놀랍게도 매우 바쁘다.
*실제 생활에서 당신은 영화의 해적 선장처럼 넘버 원 맨인가 아니면 넘버 투인가.
-난 사람들을 부리기를 좋아하니(웃음) 해적 선장이나 마찬가지다. 나와 선장은 비슷한 데가 있는데 둘 다 다소 허영적인 면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용감해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남의 말에 덜 신경을 쓰게 된다.
*당신은 정치적 일을 한다고 했는데 당신의 사생활이 미주알고주알 다 공개된 지금 진짜로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이라도 있는가.
-정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 본업이 아닌 샛길로 들어섰던 경험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지난 25년간 해온 가짜의 삶이 아닌 실제의 삶과의 대면이었다. 좌우간 여러분은 앞으로 날 자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와 코미디를 할 때의 준비는 어떻게 다른가.
-만화가 아닌 정상적인 영화를 만들 때는 왜 내가 이 대사를 말해야 하고 또 왜 각본대로 매사를 따라 해야 하는가를 자문하면서 철저히 준비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저 목청을 높여서 우습게 들리도록 계속해 읽으면 됐다. 스튜디오에서보다 내 부엌에서 읽으면 더 잘 돼 영화 만드는 사람들에게 부엌에서 녹음하자고 졸랐었다.
*‘브리젯 존스’ 제3편 ‘브리젯 존스의 아기’의 촬영이 올 가을부터 시작된다고 들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각본은 언제든지 준비돼 있다. 이 번 영화는 어디까지나 브리젯 존스의 아기의 얘기가 될 것이다.
*아기 아빠가 뒤늦게 된 기분은(그는 지난해 9월26일 짧은 관계를 가졌던 팅란 홍으로부터 딸을 얻었다).
-딸을 가져 참 좋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나 태어났으니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 딸은 아주 귀엽다. 그밖에 나는 현재 아주 괜찮은 위치에 서 있다.
*딸을 통해 배운 것이라도 있는가.
-아직 아기여서 배운 점은 없지만 조금 크면 딸을 통해 아마도 내 개성에 보탬이 되는 것을 발견할 줄로 안다.
*당신의 목소리가 주인공인 이 영화를 만들 때 실제로 연기를 하지 않아 어떤 해방감이라도 느꼈는가.
-정말 좋았다. 내가 80년대 초 연기생활을 시작했을 때 한 것은 전부가 멍청한 목소리를 내는 코미디 쇼였다. 그리고 나는 라디오 광고와 스케치 쇼 등 우스꽝스런 소리를 내는 일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과거 10년간은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만 나와 사람들이 “하나밖에 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할 때마다 난 이를 악물어야 했다. 이 영화는 내가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루에 4시간씩 녹음을 했는데 어떻게 힘이 드는지 1시간반 후면 목이 쉬어버렸다.
*당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브리젯 존스’에서의 대니얼 클리버 역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그 역을 즐겼고 그 여파도 즐겼다. 난 여자들이 나쁜 남자를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그로 인해 난 새로운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대니얼은 내가 ‘노팅 힐’이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주인공 처럼 수줍음 타고 착하고 또 상냥하지도 않은 것이 진짜 나와 더 닮았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한 만화영화는 무엇인가.
-없는 것 같다.
*당신은 어딘가 메워야 할 공허한 데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연기생활 초기에 코미디를 할 때만 해도 적어도 대본은 내가 썼고 또 난 그것을 즐겼다. 하루가 끝나면 만족감을 느꼈다. 난 남이 써 준 글을 읽을 때면 결코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다. 그래서 지난 6개월 간 태블로이드와 전쟁을 할 때 내가 부분적으로나마 만족감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써 준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말은 내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애완동물은 있는가.
-나는 벵갈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지만 현재 갖고 있지는 않다.
*당신은 음반 수집가로 알려졌는데 요즘은 모두들 노래를 불법으로 다운로드해 듣는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나 당신의 영화 공짜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해 봤다”고 말할 때마다 놀라곤 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내 집에 왔다가 보석을 훔쳐간 것을 자랑하는 말이나 똑같다. 판권 도둑질에 화가 난다.
<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