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길고 긴 침체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주택시장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주택의 모습이 경기 침체를 반영하듯 실용적인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것.
가격이 저렴해진 것은 물론 소규모, 에너지 효율적, 친환경적인 주택이 주택 구매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주택 건설업체도 새로 짓는 주택에 경기 침체를 거치며 변한 주택 구매자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주택 건설업계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신규 주택 트렌드를 알아본다.
■ 에너지 효율적
경기 침체를 거치는 동안 주택시장에 나타난 가장 뚜렷한 트렌드는 바로 에너지 효율성이다. 차량 및 가전제품 업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비용이 적게 드는 주택이 주택 구매자들의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건설업계에서도 최근 짓고 있는 주택에는 저마다 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자재와 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보이스 톰슨 빌더 매거진의 디렉터는 “최근 에너지 비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에너지 효율성을 갖춘 자재와 설비는 신규 주택 건축 때 이제 ‘머스트’(must) 아이템이 됐다”고 말했다.
에너지 효율 주택은 비자 홈스나 레나 홈스 등 대규모 주택 건설업체에서부터 스프링 빌더스 등의 중소규모 업체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주택 건설업체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텍사스 어스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프링 빌더스는 이미 수년 전부터 에너지 효율성이 강조된 주택만 짓고 있다.
이 회사의 알렉스 페티트 대표는 “에너지 효율적 주택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라며 “에너지 비용이 적게 드는 주택이 이미 주택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 그린 홈
에너지 효율성과 함께 주택 건설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트렌드가 바로 친환경 주택이다. 지난해 실시된 전국주택건설업협회(NAHB)의 설문조사에서 응답 업체의 약 68%가 앞으로 지어질 주택들은 친환경 주택이 될 것이라고 답할 정도로 친환경 주택 역시 최근 주택업계의 핫 이슈다.
친환경 주택은 방사율이 높은 유리, 절수 효과가 뛰어난 화장실 설비, 태양광 발전판 등을 갖춘 주택으로 에너지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지구 온난화 방지에도 도움을 주는 건축기법이다.
친환경 주택 바람에 주택 감정업계도 동참하고 있다. 주택 감정업계는 최근 감정사들에게 친환경적인 요소를 갖춘 주택에 높은 가치를 부여토록 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주택건설업협회의 스테판 멜맨 연구원은 “지붕에 설치되는 태양광 발전판이 아직까지 보편적이지 않지만 5년만 지나면 새로 짓는 주택마다 갖추게 될 정도로 보편화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가격 저렴화
5년여 간의 주택시장 침체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주택 가격의 거품이 많이 빠졌다. 신규 주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주택건설업협회와 센서스국의 자료에 따르면 신규 주택의 중간 가격은 2007년 24만7,900달러에서 지난해 12월 21만300달러로 떨어졌다. 신규 주택 가격이 이처럼 큰 폭으로 하락한 원인은 거래량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주택시장 활황기였던 2005년 신규 주택 판매량은 약 128만채를 기록했으나 주택시장 침체 직후인 2007년 77만6,000채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사상 최저 수준인 30만2,000채를 기록했다. 따라서 주택 건설업체들은 가격 인하를 통해 신규 주택 판매를 늘리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소규모화
큰 집에 대한 인기가 사라진 것도 주택시장의 최근 트렌드 중 하나다. 35년간 증가 추세를 보여 온 주택의 크기가 경기 침체를 겪는 동안 최초로 작아지기 시작했다. 센서스국이 처음 집계를 시작한 1973년 미국인들 주택의 중간 크기는 약 1,525평방피트였으나 지속적으로 크기가 확대돼 2007년에는 2,277평방피트까지 커졌다. 하지만 경기 침체를 거치며 주택 크기는 35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2010년 2,169평방피트로 줄었다.
전미주택건축디자인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주택의 크기는 지난해 2,242평방피트로 조금 커졌지만 조만간 대형 주택이 다시 인기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주택 크기가 줄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관리비 부담 때문이다. 에너지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대형 주택은 이제 중산층들에게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 주택 가격 상승기에는 주택 크기가 커야 매매 차익도 커져 대형 주택이 인기였으나 이제 주택 구매자들의 관심사는 매매 차익에서 주택 관리비로 이동했기 때문에 소형 주택에 대한 인기가 늘고 있다.
빌더 매거진의 보이스 톰슨 디렉터는 “이제 바이어들은 높은 천장의 주택을 보면 냉난방비 부담이 먼저 떠올리는 시대여서 대형 주택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했다.
■ 기본 요소만 갖춘 주택
건축비가 적게 드는 주택을 짓는 건설업체가 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건축비가 많이 드는 복잡한 디자인 대신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건축 비용 절감을 위해 주문 제작하는 자재보다 규격품 자재를 주로 사용하고 인력이 집중되는 작업 역시 최소화하는 현상이 최근 주택 건설업계에서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지어지는 주택들은 복도가 전보다 좁아지는 등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소형 컴퓨터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홈 오피스를 없애는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공간만을 위주로 지어진 주택이 늘고 있다.
■ 복합 공간
주택이 소형화하고 주택 내 불필요한 공간이 제거되는 대신 여러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복합 공간이 추가되고 있는 것이 최신 트렌드로 떠올랐다.
가족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각자의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최근 신규 주택이 필수조건이다. 그레이트 룸으로도 불리는 복합 공간은 주방, 다이닝 룸, 패밀리 룸, 리빙 룸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이 공간에서 자녀들은 숙제를 하는 동안 주부는 식사를 준비하고 TV도 시청할 수 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