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음 불러보는 민요 한 번에 합창 완성

2011-02-2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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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매스터코랄 ‘한국이야기’ 리허설 현장

특유의 장단도 잘 살려 … 발음연습 인상적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악기도 목소리처럼 폭넓은 음색과 풍부한 감정을 표현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최고의 악기’들이 모여 화음을 이루는 합창 공연을 들으면 감정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케스트라 공연도 합창단이 함께 할 때 온전히 꽉 차는 느낌, 경건하고 위대하며 장엄의 극치를 이루는 연주가 되는 것이다.


지난 23일 저녁 LA 매스터코랄의 ‘한국 이야기’(Stories from Korea) 공연의 리허설을 참관했다. LA 매스터코랄은 명실공히 미 서부지역 최정상의 합창단으로, 특히 초견(악보를 처음 보며 즉석에서 연주하는 것) 실력은 최고로 알려져 있는데, 말로만 듣던 그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선주씨(오른쪽)가 LA 매스터코랄 단원들에게 ‘한강수타령’의 한국어 가사의 발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날은 3월6일 공연을 위한 세 번째 연습 날. ‘한강수타령’과 ‘경복궁타령’‘도나 노비스 파쳄’‘달아달아 밝은 달아’를 연습하는 날이다(통상 공연을 위해 6회 정도 리허설을 갖는다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습 때는 ‘무궁화’와 ‘메나리’‘아리랑 환상곡’을 초견했다고 한다).

그랜트 거숀 지휘로 리허설이 시작되자 과연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한강수타령이 들려왔다. 우리 같은 사람이 듣기엔 더 이상 연습할 것도 없고, 그 자체로 환상적인 콘서트였다. 그런데 그것이 생전 처음 불러보는 초견이라 했다.

몇 소절씩 나눠 부르거나, 파트별 연습도 전혀 없이, 각자 악보를 보면서 단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화음을 맞춰 노래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우리 민요 특유의 가락과 장단이 묻어나오는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여질 만큼 이들의 연주는 완벽했다. 놀라움은 계속됐다. 다음 곡인 ‘경복궁 타령’에 이어 ‘도나 노비스 파쳄’, 그리고 ‘달아달아 밝은 달아’로 이어지는 연습에서 모두 단 한방에 합창이 완성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감동을 넘어 전율스런 것이었다.

오로지 관건은 한국어 발음이라,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한인 소프라노 단원 여선주씨가 단상에 나와 가사를 한 단어 한 단어 읽어주며 가르치는 시간을 가졌다. 악보에 영어로 표기된 발음의 부자연스런 부분들을 고쳐주고 정확한 한국식 표현을 알려주기 위한 시간이다.

“에헤요 어허야 얼사함마 둥게 디여라 내 사랑아”(한강수타령)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경복궁타령)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달아달아 밝은 달아)

여선주씨가 우선 문장 단위로 읽고 나서 한 단어씩 발음해 보이면 60여 단원들이 한 목소리로 따라 읽는다. 어찌나 열심히 큰 소리로 따라 읽는지 마치 초등학교 국어시간 같기도 하고, 프로다운 열성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씨는 재치 있고 재미있게, 정확하고 친절하게, 그리고 가장 우리말에 가깝도록 입모양, 혀 위치까지 가르치는 한편 단어의 뜻도 설명해 주고, 필요할 때는 원곡의 노래도 들려주면서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하게 이끌었다.


이들의 아름다운 소리가 디즈니 홀에 울려 퍼지는 공연을 생각을 하니 몹시 설렌다.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외국인인 LA 매스터코랄이 구성지게 불러주는 우리 노래와 장단, 우리민족의 한을 치유하는 음악회다. 우리가 감상하고 감사하지 않으면 누가 그 노고와 가치를 알아줄 것인가.

그랜트 거숀의 지휘로 ‘한국 이야기’ 공연을 연습하는 LA 매스터코랄. 이 음악회를 위해 6회의 리허설을 갖는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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