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주택 소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주택 소유를 저축이나 투자라고 여겼던 인식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또 주택 구입을 계획했던 대기 구매자들마저 주택 구입을 주저하며 미루는 것이 최근 추세로 여겨진다. 특히 은퇴자금 역할을 해줄 것을 믿었던 주택의 가치가 대폭 하락하면서 은퇴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 경우도 최근 흔하게 접한다. 금융위기 후 달라진 미국인들의 주택 소유에 대한 인식을 알아본다.
가격 급락 노후준비 계획 수정 불가피
구입 뒤로 미루고 소형주택·렌트 선호
■구멍 뚫린 은퇴계획
버니지아주 리치몬드의 선트러스트 은행에서 비즈니스 시스템 분석가로 근무하는 놀란 하이터와 그의 부인은 은퇴계획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소연 한다. 은퇴자금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주택가치가 최근 크게 떨어져 은퇴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곧 50세를 바라보는 하이터는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처분 자금으로 조그마한 은퇴주택을 현금으로 마련할 계획이었다”며 “모기지 부담에서 벗어나 여생을 즐기는 것이 우리 부부의 꿈이었다”라고 은퇴계획을 밝혔다. 하이터는 또 “최근 떨어진 주택가격이 은퇴 전까지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은퇴연금으로 모기지 페이먼트를 내야 할까봐 걱정이다”는 우려를 덧붙이기도 했다.
■소형주택 선호 현상
대저택을 일컫는 ‘맥맨션’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소형주택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전국 주택건설업협회(NAHB)의 통계에 따르면 단독주택의 중간 크기는 2006년 약 2,268평방피트에서 2009년 약 2,135평방피트로 축소됐다. 주택 크기를 줄여 에너지 비용 등의 주택 관리비용을 절감해 보겠다는 요구가 반영된 추세로 볼 수 있다.
■대가족 가구 증가
금융위기 후 나타난 뚜렷한 주택거주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대가족 가구가 늘었다는 것이다.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사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하지 못한 자녀나, 떨어져 살던 자녀 가족이 차압 후 집을 잃고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또 반대로 부모의 주택 처분이 힘들어져 자녀 가족과 함께 주택비용을 분담하기 위해 한 집에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두 주택비용 부담이 가중돼 나타난 현상으로 ‘퓨’(Pew)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2세대 이상이 한 주택에 사는 대가구 비율은 1980년 약 12%에서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약 16%로 늘었고 최근에는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같은 대가족 가구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은퇴자협회 AARP의 엘리노어 긴즐러 부사장은 “불안한 금융시장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여러 세대가 한 주택에 함께 거주하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렌트 선호 현상
여러모로 주택 구입 여건이 유리한 바이어스 마켓이지만 그래도 렌트를 선택하겠다는 가구가 늘고 있다. 차압이나 숏세일 등으로 주택을 급처분한 경우는 렌트가 불가피한 선택이고 주택구입 자격이 있는 가구도 렌트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주택시장이 아직 불안정하다고 판단하는 가구들은 주택시장 변동 상황을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판단으로 당장 주택 구입을 미루고 렌트를 하겠다는 전략이다.
연방 국책은행 패니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주택 임대자 중 약 59%가 임대를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는데 지난해 1월(54%)에 비해 답변자 비율이 높아져 주택시장 상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가구가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장기거주 목적 주택개조 증가
주택시장 침체로 주택처분을 포기하고 아예 개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주택을 살기 편하게 개조해 오랫동안 거주하려는 목적이다. 특히 최근 ‘친환경 주택’ 추세와도 맞물려 에너지 절약형 주택개조가 늘고 있다. AARP의 조사에 따르면 45세 이상 주택 소유주 중 약 3분1은 장기거주 목적으로 주택개조를 실시한 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경제사정이 나아지더라도 4~5년 전과 같은 주택구입 ‘붐’ 현상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공인재무설계사위원회(CFPBS)의 일레노어 블레이니 소비자 대변인은 “21세기에는 주택보유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며 “주택이 자녀의 학자금이나 은퇴자금을 대신해 줄 ‘저금통’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가는 주택시장 불경기 때 재정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충고했다.
<준 최 객원기자>
금융위기를 겪으며 주택 보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을 저축 수단으로 여기는 인식이 이제 바뀔 때가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은퇴계획에 차질을 빚는 노년층이 늘고 있다. 따라서 주택을 통해 은퇴자금을 마련하려고 했던 노년층의 은퇴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