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나아진 줄 알았더니 여전하구나.’ 한국의 강원도에서 지난달 23일 전의경 부대원 6명이 고참들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탈영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사건 후 경찰청은 전국 전의경 부대의 전입 6개월 미만 4,581명을 대상으로 소원수리를 받았는데 이 중 365명이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을 못 마시게 하고 잠을 못 자게 하는가 하면(이런 행위는 고문이나 마찬 가지로 영화 ‘제17 포로수용소’에서 나치 수용소장이 정보를 밝히지 않는 미군장교에게 이 방법을 쓴다) 웃지도 못하게 하고 고참의 발 냄새를 맡게 했다.
또 앞머리를 강제로 깎고 벽에 붙어서 다니도록 하는가 하면 성적으로 모멸적인 흉내를 내는 등 가혹행위와 얼차려(내 졸병시절엔 기합이라고 했다) 방 법도 가지가지다. 물론 구타도 적지 않았다.
이런 행위들은 소위 군기를 잡기 위해서인데 이 뉴스를 읽다 보니 ‘지금이 어느 땐데’라는 생각과 함께 내 졸병시절이 떠올라 입에서 쓴맛이 났다. 그 때도 소원수리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졸병들은 후에 닥칠 기합이 무서워 수리서를 백지로 내곤 했다.
60년대 초반 자기에게 온 연서를 뜯어 읽어본 고참들에 대해 소원수리를 통해 항의했다가 고참들로부터 구타를 당한데 격분, 고참 2명을 사살하고 처형당한 학보병 최영오 일병 사건이야 말로 소원수리의 참혹한 후유증의 일례다.
당시 군에서의 이런 가혹행위는 일제의 잔재였다. 일제 강점기 군의 개인에 대한 가혹행위는 김기영 감독이 만든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에서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한운사(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가 쓴 인기 라디오 드라마가 원작인 영화에서 일제 강점기 학병으로 군에 징집된 아로운(김운하-사진 오른쪽)은 일본 선임하사들에게 매일 같이 두들겨 맞고 기합을 받아 초죽음이 된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아로운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악질 고참하사(이예춘-사진 왼쪽)의 군화 바닥에 묻은 똥을 혀로 핥는 장면. 그러나 아로운은 이런 견디기 힘든 가혹행위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정의와 저항의 정신을 지닌 고집쟁이였다.
아로운처럼 죽도록 고생을 하는 또 다른 졸병이 일본의 마사키 코바야시가 감독한 10시간짜리 3부작 대하서사 반전드라마 ‘인간의 조건’(1959~1961)의 주인공 가지(타추야 나카다이)다.
코미카와 준페이가 쓴 소설 ‘닌겐 노 조켄’이 원작으로 가지는 평화주의자요 인본주의자. 그는 만주의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회사가 부리는 중국인 포로들에 대한 가혹행위에 항의하다가 군에 징집된다.
일본인인 가지도 아로운처럼 선임하사관들로부터 온갖 기합을 받는데 그에게 내린 벌 중 하나가 변소의 대변을 통에 담아 갖다 버리는 것.
그러나 가지도 아로운처럼 이런 가혹행위에도 결코 인간성을 잃지 않는 고집쟁이인데 그는 결국 전쟁이라는 광기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졸병은 괴로운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 제임스 존스의 소설이 원작인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주인공으로 권투선수인 프루(몬고메리 클리프트)는 권투부대인 중대에서 권투를 포기했다는 이유로 하사관들에게 온갖 기합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아로운과 가지와는 달리 구타는 당하지 않고 완전군장에 구보, 체육관 바닥 청소 그리고 주말 외출 취소 같은 징계를 받는다. 그런대로 다소 민주적이다. 그런데 프루 역시 쇠고집이어서 이런 기합에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데 그는 결국 이 고집 때문에 죽는다.
모두 자아를 지키려는 고집쟁이들인 아로운과 가지와 프루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군이란 개체를 용인치 않는 체제다. 그런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찾는다는 것이 애당초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육체 보다 정신이 더 괴로웠던 (난 제대 후에도 오랫동안 재입대의 꿈에 시달렸다) 나의 군생활에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졸병 때 고참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받은 전우가 고참이 되더니 그 악습을 이어 받는 것이었다.
인간은 잘못으로부터 배울 줄 모르는 동물이긴 하지만 이번에 학대 받은 전의경들이 고참이 되었을 때 신참들을 어떻게 대할지 자못 궁금하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