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나 돈이 보장된 자리를 뒤로 하고 내려오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마르고 닳도록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가끔씩 이런 상식을 깨뜨리는 행보를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
켄트 콘래드 연방 상원의원은 18일 오는 2012년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의 정계 은퇴선언인 셈이다. 노스 다코다 출신의 콘래드 의원은 1986년 상원의원에 당선된 민주당의 중진. 특히 상원 예산위원장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정치인이다.
그는 불출마의 변으로 “남은 2년 임기동안 나 자신의 재선 캠페인이 아니라 나라의 부채 문제를 해결 하는데 진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사가 자신의 재선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현재 심각한 재정 위기에 빠져 있다고 걱정하면서 이를 해결하는데 남은 임기를 쏟아 붓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노스 다코다는 보수 색채가 짙은 곳으로 콘래드가 은퇴할 경우 공화당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곳. 그러면 민주당이 상원에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다수당 지위가 흔들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도 콘래드는 민주당의 당리보다 국사를 앞세웠다.
콘래드가 불출마를 선언한 다음 날인 19일에는 코네티컷의 무소속 조 리버맨 상원의원이 역시 불출마를 선언했다. 금년 68세인 리버맨은 여전한 영향력을 누리고 있는 정치인으로 4년 전의 무소속 당선이 그것을 뒷받침 해 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때는 지나갔다며 40년 정치생활을 마감하겠다는 뜻을 공표했다.
정치인들에게 의원이라는 타이틀은 생명과 같다. 그렇기에 70대 고령에 대한 비판과 ‘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는 뜻의 ‘만사형통’ 조롱을 견디면서까지 국회의원 자리를 지키려 드는 것이 보통의 정치인들이다. 입으로는 애국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사익을 우선시 한다. 그런 풍토에서 재선이 가능한 나이와 여건임에도 ‘국사우선’과 ‘세대교체’를 들어 정치판을 떠나겠다고 밝히는 의원들의 모습은 모처럼 신선함을 던져준다.
그런 가운데 프로 야구에서도 18일 놀랄만한 은퇴선언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캔사스 시티 로열스의 투수 길 메쉬(32). 메쉬의 금년 계약은 1,200만 달러로 그는 그냥 있기만 해도 이 돈을 모두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은퇴하겠다고 전격 선언한 것이다. 선발투수로 뛰어 온 메쉬는 어깨에 이상이 생기면서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자 성적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서 1,200만 달러를 받느니 차라리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나도 사람인 이상 큰 돈 앞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보장된 계약을 포기하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 떳떳하고 팀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프로 선수로 이미 많은 돈을 번 메쉬이지만 1,200만 달러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일 수는 없다. 그래서 언론은 그의 결정에 ‘1,200만 달러짜리 자존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든 것이 멋지게 자리에서 내려오는 일이다. 개인의 작은 이익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명예와 돈을 포기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끔 그런 것을 넘어서는 사람들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만큼 그런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