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추(晩秋)

2010-11-3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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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어제 내린 비에 씻긴 수목들
산책길을 황홀케 한다
실안개 걷어낸
해맑은 아침 햇살이 부서져
가지 끝마다 수정 알로 맺혔다
오늘따라 숲 속 공기 더 상큼하고 상쾌하다
비 먹은 낙엽들이 발등을 적시는 촉감도 다정하다
벌써 갈색으로 늙은 도토리 발끝에 톡톡 튄다
가을걷이에 바쁜 다람쥐의 꼬리도 더 길어진 것 같다
사슴, 토끼 짐승의 발자국도 낙엽에 덮였다.
만추는 잉걸불로 뜨겁게 달군다

마로니에 낙엽이 뒹구는
밤색 벽돌 테라스의 탁자엔
붉은 와인글라스를 부딪치는 연인의 미소
빨간 가을 엽서 한 잎
체크무늬 호무스펀 윗도리에
사-픈 소리 없이 내리니
가을의 깊음이 적연(寂然)하다

넓은 들판,
허수아비 비껴선 볏가리에
통통 살 찐 참새 떼 주전부리 바쁘고
누렁 황소가 멍에 멘 달구지엔
볏단 아름아름 산을 재이며
초가의 울타리마다
야윈 가지엔 숙시(熟?)가 주렁주렁
농부의 얼굴에 만추를 그린다

국화 향기 그윽한 밝은 달 밤
너새의 울음소리
삼경(三更)에 야사(夜思)를 엮으며
미늘에 걸린 늙은 사향(思鄕)에도
황혼의 노을
만추는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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