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와 1.5·2세 사이의 세대 차이 줄이기는 미주 한인사회가 늘 고민해왔던 이슈 중 하나다. 부모세대가 보는 자녀세대, 자녀세대가 바라보는 부모세대의 모습과 기대가 서로 엇갈리면서 빚어진 갈등은 서로에 대한 인격적 존중 부족을 낳으면서 갈수록 세대 차이는 커져만 갔다. 본보가 올 초 전개한 ‘존경받는 1세가 되자’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올해 본보 백상 장학생 수상자가 들려주는 1세에 대한 1.5·2세의 생각과 불만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진행·정리=이정은 기자>
참석자 명단
정가원(미국명 피스·그레잇넥 사우스고교)
김은미(미국명 그레이스·하퍽 고교)
양인규(미국명 제이슨·해클리 스쿨)
마혜승(미국명 그레이스·노스포트 고교)
유형근(미국명 제임스·헌터칼리지 고교)
조현식(미국명 마이클·제리코 고교)
도지원(미국명 브라이언·로즐린 고교)
박보민(미국명 로이스·헌터칼리지 고교)
■1세가 가장 존경스러울 때는?
형근: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미국에 와서 고생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보민: 주중에 열심히 일하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는 교회 봉사까지 너무나 열심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한국보다 더 많은 기회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부모 세대가 왜 굳이 미국에 와서 고생하는지 아직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부모 세대의 노력과 희생은 대단하다.
혜승: 개인적으로 최근 3년간 한인사회와 접할 기회가 많았다. 한인 부모세대는 가족을 위한 희생도 희생이지만 1.5·2세를 위해 한인 지역사회에서 애쓰는 그들의 노력과 애정도 놀라웠다.
지원·은미: 처음 보는 사람이든 타인종이든 누굴 만나든지 먼저 허리 굽혀 인사하는 예의범절이 몸에 배어있는 한국인이 보여주는 상대에 대한 존중의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
■1세가 부끄러웠던 적은 언제?
지원: 강한 액센트와 서툰 어휘선택 등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서 억지로 영어로 얘기하는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액센트는 고치기 힘들겠지만 단어실력은 충분히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은미: 어릴 때 친구들 모임에 부모와 함께 가면 영어가 부족한 부모를 뒀다는 사실이 싫었었다. 지금은 부모의 입장이나 상황을 이해하지만 어릴 땐 그랬었다.
보민: 학교에서 학부모-교사 컨퍼런스만 하고 나면 교사들의 달라진 태도에 당황할 때가 많다. 평소 모범생이던 한인학생 이미지가 외계인처럼 외도된 느낌도 들었다. 부모세대의 부족한 영어만이 문제가 아니라 음식문화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청국장은 너무 싫다.
현식: 문화차이 때문이겠지만 타인종에게 한국적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도 영어를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서 우리더러는 한국어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가원·형근: 언어소통의 장벽 때문인지 타인종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인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도 없고 타인종과는 교류도 하지 않아 사회적인 고립을 자초하는 한인 1세들의 모습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특히 과거에 묶여 있는 1세의 모습도 안타깝다.
■1세에 대한 또래 한인 청소년의 가장 큰 불만은?
혜승: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부모세대의 방식과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관습에 얽매이는 행동은 미국보다 더 빨리 변화하는 한국에서도 수용되지 못할 것들이라고 본다.
형근: 한국문화에 뿌리를 둔 행동 때문이지만 때로 1세들이 지나치게 거만한 태도로 2세들에게 무조건적인 존경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가원: 한인부모들은 명문대 진학이나 귀한 상을 타와야만 자녀를 대우해주는 태도가 강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아이들은 무조건 어른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고 가르치려 드는 모습은 누가 봐도 부끄럽다. 타 소수계 인종보다 스스로 우월하게 생각하는 점도 유별하다.
현식: 또래의 가장 큰 불만은 자녀를 너무 엄히 키운다는 점이다. 부모세대가 성장하며 교육받은 방식 그대로 자녀세대에 주입시키고 강요하려 한다. 자녀의 의사 결정권은 무시되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녀를 키우려 들다보니 때로 자녀 세대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이르기도 한
다.
보민: 한인 부모세대는 자녀를 억압하는 동시에 과잉보호도 지나친다. 또한 미신을 맹신하는 것도 이해 못할 부분이다. 대학도 아이비리그 밖에 모르고 SAT 성적에 목을 맨다. 가족이 상을 당했을 때 이틀 동안 머리도 감지 못하게 하거나 기상 직후 꿈 얘기를 떠벌리지 말라거나 사소한 일을 목숨처럼 지키며 자녀에게도 강요하기 일쑤다.
지원: 이민 1세 부모 세대의 짧은 어휘력과 액센트, 부족한 영어실력은 모든 1.5·2세 자녀세대의 공통된 불만 사항이다.
은미: 자녀세대가 꿈꾸는 인생을 부모세대가 지나치게 통제하려 든다는 점이다. 돈 많이 벌고 명성까지 얻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고서는 부모에게 자유롭게 미래의 꿈을 얘기하기 힘들다.
인규: 언어장벽과 문화차이로 한인 1세 부모세대는 미국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최고를 안겨주려는 목적으로 미국 땅에 들어와 여러 일들을 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자녀들과도 제대로 된 관계 형성에 실패하기 일쑤다.
■1세의 잘못된 행동의 원인은 뭐라 생각하나?
형근: 자녀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로 소통이 적어질수록 오해와 불만도 커지기 마련이다.
보민: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통 관심도 없고 모든 정보의 창구가 한인 언론에만 제한돼 있다. 당연히 제한적인 정보만 접하다보니 시야도 좁아지게 되는 것 같다.
혜승·은미: 한국식 사고방식과 한국적인 것에 지나치게 길들여져 있다. 한인지역사회 센터 등 구심점이 될 만한 곳이 없어 안목을 넓힐 기회도 많지 않다.
지나친 전통주의다..... 지역사회센터 재단도 없고 구심점이 없어서 안목을 넓힐 기회도 많지 않다
■존경받는 1세가 되기에 필요한 것은 무얼까?
가원·은미: 자녀세대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자세다. 자녀와 함께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열린 마음의 자세도 필요하다. 그것도 자녀에게 미국사회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학교 성적이나 숙제 얘기만 늘어놓지 말고 부모의 사랑을 표현해줘야 한다.
현식: 자녀에게 일정 부분 결정권을 주고 의사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자녀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부모야 말도 가장 존경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돈이 행복이 아닌 만큼 돈만 많이 버는 직업을 인생 목표로 삼게 하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규: 부모 자식 사이에는 신뢰가 밑바탕 돼야 한다. 자존심이나 기대로 엮어진 관계가 아니다. 부모의 권위로 자녀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혜승: 존경받는 어른이 되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넓은 이해심과 세상을 보는 눈이다. 더 큰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자녀세대를 이끌어 줄 만한 안목과 비전을 갖춘 부모세대라면 아낌없는 조언과 후원이 존경스러울 것이다.
■1.5·2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형근: 1세에게 기대하는 노력만큼 1.5·2세들도 1세에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민·혜승: 젊은 세대들도 부모 세대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히 집안에서는 장남·장녀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늘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가원·지원: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려면 서로 보다 유연한 사고의 틀이 필요하다. 특히 부모세대가 새로운 문화와 타인종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보수적인 틀을 깨고 나와 부딪히고 경험하도록 하려면 자녀세대의 인내와 노력이 요구된다.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부모 세대가 미국 땅에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자녀세대가 인내를 갖고 기다려줘야 할 것이다.
■그 외 하고픈 말은?
혜승: 언어장벽과 문화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인 이민자 자녀세대는 부모세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미국에 이민 온 이유가 뭐든, 이민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창피를 당하든 상관없다. 모두가 보다 나은 한인사회, 보다 나은 자녀의 미래를 위한 노력일 뿐이다.
가원: 1.5·2세가 한인 1세들을 싫어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서는 미주 한인사회의 미래 발전도 없고 한인 후손에게 한국문화를 이어가게 하기도 힘들 것이다. 이번 좌담회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부모와 나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고 부모세대에 갖고 있던 잘못된 편견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 IMG SRC="/photos/NewYork/20101116/1BaekSang 3.jpg" ALT="" HSPACE="5" VSPACE="0" BORDER="0">
5일 열린 좌담회에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2010년도 백상 장학생 수상자들.<사진=윤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