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세 함정
2010-11-15 (월) 12:00:00
얼마 전 ‘봉은사 땅 밟기’라는 동영상 때문에 다시 한 번 우리는 이맛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일로 기독교는 또 명진 스님의 매서운 회초리를 맞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때 첫 번째 장애물을 잘 넘어갔다. 난공불락이라는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릇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너에게 주겠다.” 기고만장한 이들은 아이 성을 점령할 때 “전군을 다 동원할 필요까지 있겠는가”라며 3,000명의 군사만 동원하였다가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과신 때문이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첫 번째 함정이다. 과신은 신앙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미신은 과신과 같은 과이다. 그 안에는 인간 자신이 세워놓은 자기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대개가 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인간 자신들을 위해 설정해 놓은 것들이라는 게 문제다. 아마도 무모한 봉은사 땅 밟기도 여기에 기인한 것이리라.
과신은 자만심으로 자라난다. 두 번째 함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우는 이런 자만심이 선민사상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는 자만심의 절정이 선민사상이다.
그런데 이 자만에 가득 찬 선민신앙을 보기 좋게 부셔버린 분이 예수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만도 하다. 그들의 허울 좋은 자만심을 건드려 놓았으니 말이다. 오늘 한국 기독교가 저리도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함정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함정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컴플렉스의 함정이다. 지나친 과신과 자만심의 함정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그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흔히 종교적 열성분자들이나 구원파와 같은 극단적 종교성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이런 컴플렉스의 깊은 함정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이 함정을 메울 수는 없는 것일까.
조명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