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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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유대인과 중국인의 배울점

2010-11-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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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국의 모방송국에서 전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되는 유대인이 어떻게 미국을 움직이고 또 세계를 움직이는지 다큐멘타리를 보여준 적이 있다. 2000년을 나라 없는 설움으로 살았던 그들은 그 방랑 생활로 인하여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계기를 얻고 그 것을 강력한 네트웍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힘을 이제 중국인들이 또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어디든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을 세우며 그리고 그 곳을 중국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이 처음 미국에 들어 왔을 때 그들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업들로 서서히 경제권을 확보하고 그 막대한 자금으로 정치권을 흡수했으며 전체 노벨상의 25%를 차지하는 놀라운 천재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힘은 궁극적으로 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 나온 것처럼 보인다. 처음 미국에 이민 온 유대인들을 그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뒤늦게 들어온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들은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한다. 결국 강력한 공동체의식과 전 세계에 퍼진 유대인 네트웍이 지금의 유태인 파워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 시점에 당연히 우리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배워야 할 것이다. 화합과 우리는 별로 친하지 못하다는 것을 우린 내부로 부터 수없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끝임없이 뉴스를 통에 알려지고 다시 사회적 화두가 되고 성장통이라 해야 할 지 그저 다람쥐
쳇바퀴라 할 지 아무튼 교육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경쟁하는 것 같다.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
각하고 자식을 명문 대학에 진학 시키는 것은 주위에 있는 한국학생들을 넘어서야 하는 것처럼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주류사회에 진출 못하는 아까운 인재들 보며 유리지붕만을 불평 삼는 것 같다.

과연 유대인들도 그랬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유리막은 혼자서 부수기에는 너무 두껍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백층 높이에 그 정상이 있다면 그 정상을 혼자서 갖은 최신 장비로 일층부터 올라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개인주의적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독한 싸움으로 채 오십층도 못미처 멈춰버린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나을 뿐이고 오십일층이 유리지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유가능한 모든 것을 공유하면 함께 도전하는 공동체적 사고는 전체 공동체를 이미 오십층이라는 곳으로 엘리베이터로 상승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거기서부터 자기의 능력에 따라 백층이나 구십층이나 오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유리벽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믿는다.


유대인들은 교육의 첫째 과정 중에 자기 이름의 가치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사건들과 연관 지어진 선조들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다고 한다. 이름 안에서 이미 그들 스스로의 역사를 지키고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부귀영화와 무병장수 등에 기대어 이름을 짓는다. 물론 항렬이 있어 그 가계를 기억하게 하지만 그것은 내가 어느 가문 소속인가를 밝히는 목적에 불과하다. 여기서 또 하나 느끼는 차이는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그들의 정신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필자는 우리가 어리석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후손에게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남겼노라고 통곡하며 젊은 세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선조나 기성세대를 보지 못한듯하다. 우리가 무지하고 힘이 없어 동족끼리 전쟁을 치르게 되었노라고 한탄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사죄하는 이도 기억이 안난다.이 곳 미국에서도 이민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십 일층이 아니 2층에 있는 유리벽도 깨지 못해 2세들에게 다시 일층부터 기어올라야만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도 못 본 듯하다.

우리는 어쩌면 화합보다는 반성 없는 민족, 치욕을 모르는 민족인지도 모른다. 내 형제가 뺨을 때리고 가는 것은 참지 못해도 옆집 사람의 잔혹한 폭거 앞엔 한없는 인내와 비굴을 보이지 않나 소름이 끼친다. 중국인들도 본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으로 갈라져 불협화음을 내다가도 민족적 가치에 이르
면 중화라는 하나의 목적아래 단합이 된다고 한다. 이는 이미 중국인을 시의원으로 만드는 과정 안에서 여러 번 목격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진정 교육해야 하는 것은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자기 형제조차 적으로 돌
리고 지극히 고독하게 치열한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와 하나가 모여 더 큰 하나가 되고 더 큰 하나는 두 배가 나인 열배의 힘을 발휘 할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된다. 좁고 작은 나라에서 강요되었던 무한경쟁으로 형제끼리도 잔인 했던 암울한 기억을 버리고 이 넓고 광활한 나라에서 이제 경쟁의 대상이 내 눈에 존재하는 내 형제가 아니라는 하나로 뭉쳐져야 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마땅할 것이다. 이민 와서까지 한국을 가르쳐서 무엇 할 것이냐는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매년 워싱턴에서 미국의 정계 거물들을 쥐고 흔드는 유대인들을 보면 결코 그리 반문 할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것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경쟁하며 위를 향해 솟구쳐야 하는 우리의 후대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다. 학부모들이여 좋은 것은 나누라 그 것이 내 자식을 진정으로 성공 시키는 길이다. 너나 잘하라는 식이 아니고 나부터 잘해보자.
김찬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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