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섯 손가락

2010-11-1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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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미국에 오래 살았나 봐.” 남편이 한 마디 툭 던진다. 내 뒤를 따라오던 노인 부부에게 문을 잡아 주느라 뒤늦게 샤핑센터 주차장에 도착한 내게 한 말이다. 칭찬이라기엔 조금 비딱한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

내용은 이랬다. 샤핑센터 문을 잡아 주던 내가 정말 나이 많아 보이는 노부부를 손가락 하나 까닥해 부르더란다. 내용이야 “내가 어르신들 나오실 때까지 문을 잡아 드리겠다”는 친절의 표현이었지만, 남편은 노인에게 손가락 하나로 표현하는 내가 어색했었나 보다. 하긴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이 손가락 하나로 오라 가라 했을 땐 자존심이 상해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미국에 살면서 그건 단순한 손가락 표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에게는 그저 ‘손가락질’일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주저 없이 자연스럽게 손가락 표현을 하게 됐으니 정말 내가 미국에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

손가락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만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새끼손가락으로는 굳은 맹세도 하고, 손가락 몇 개로는 사랑한다는 의미도 전달할 수 있고, 어릴 적 엄마가 약지 손가락으로 휘저어 주셨던 약은 효과가 최고였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차가 멈춘다. 그런데 집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식당 앞이다. 갑자기 하게 된 샤핑 때문에 저녁준비가 많이 늦겠다 싶어 밖에서 먹고 들어갔으면 했는데, 그걸 남편이 알아차린 거다. 그래! 이럴 땐 엄지손가락 번쩍 들어 ‘Thumbs-up’을 해 주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야말로 해주면 해줄수록 모두가 행복해지는 표현이 아니던가.
박명혜/식물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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