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29일의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 텔레비전 뉴스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대낮 한인타운 한 가구점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어느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여인이 아들인 것 같은 열살 남짓의 아이와 둘이서 가게의 상품인 테이블을 마주 잡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가게 문을 나서는 장면을 비춘 것이었다.
그때 폭동의 원인이 25년 이상 이어오던 공화당의 보수적인 인종정책에 분노한 흑인들이 백인 주류사회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갖게 되었고, 이와 같은 흑백 갈등의 표출이 폭동의 근원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진원지인 사우스 LA가 한인들의 상권이 주를 이루었던 관계로 피해를 입은 1만여 개의 상점들 중 2,800여개가 한인업소일 만큼 한인들의 피해가 가장 컸던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흑인들의 백인 주류사회에 대한 분노의 표출 때문에 한인들이 가장 크게 다치고 마치 고래 등 사이에 낀 새우처럼 우리가 가장 큰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흑백갈등이 한흑 갈등으로 호도되어 우리 동포들을 더 많이 아프게 했던 사건이었다.
그 폭동으로 치안이 엉망이 된 틈을 타 한인타운 상가에까지 좀도둑들이 기승을 부렸고 TV방송은 줄곧 상황을 보도했는데 그 중의 한 장면이 한인타운의 가구점을 비춘 것이었다. 아직도 눈에 선한 것은 자식과 함께 도둑질을 하던 그 어미의 무지함에 어이가 없었고, 더욱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남의 가게 물건을 버젓이 들고 나오는 도둑들을 옆에서 팔짱을 끼고 물끄럼이 바라보고 있던 정복차림의 경찰이 그 화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 상부에서 어떤 지시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상황에서는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이 사건을 더 키우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장소가 소위 백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부촌이나 브렌트우드, 혹은 베버리힐스 였더라면 그 경찰관이나 윗상부에서는 어떤 대응책을 내놓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많은 동포들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시정부나 주정부, 경찰서 등을 비난하고 성토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면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한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며칠 전 끝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아주 침통한 얼굴로 기자회견을 했었다. 엄청난 세금을 들여 실시한 경기부양정책이나, 최고우선순위로 추진한 의료정책 등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아지지가 않는 경제가 민주당의 완패를 불러오고 말았다. 2년 전 변화를 주창한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민심이 이제는 다른 변화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원에선 공화당이 다수가 된 의회가 미국 국가정책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할 것이고, 국민의 여론을 반영해야하는 정부와 민주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게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얘기가 된다.
이렇듯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국민이 뽑아놓은 정치 지도자나 다수당의 정책방향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주정부나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LA시 등의 지방정부도 선거를 통한 민심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 된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우리 한인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당선되어 기쁘기는 하지만, 한인 최대 거주 및 상업 활동이 활발한 이곳 LA에서는 지방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힘 있는 정치 지도자가 아직 나타나지 못하고 있어서 매번 선거 때마다 섭섭함이 많이 있다. 대통령이나 연방 상하원의 굵직굵직한 한인 정치가도 먼 훗날 가능한 얘기이지만 우선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지방정부에 우리 한인 동포들이 많이 진출해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지방정부의 어떤 정책이나 결정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며칠전에 우연히 접하게 된 기사를 이 칼럼에 옮겨본다.
어떤 소도시의 주민 한사람의 집에 불이나서 소방서에 신고를 했으나 도착한 소방관들은 불난 집은 내버려두고 불이 번지지 않도록 집주위에만 물을 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집은 전소가 되었고 당사자는 물론이고 듣는 이들을 모두 분노하게 하는 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랜 경기침체의 여파로 지방정부의 재정위기의 심각함은 어디나 다를 것이 없었을 테고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테네시주의 오비온카운티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족한 소방서비스 예산을 메우기 위해, 소방소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매년 75달러씩을 내도록하는 법이 시행되었는데 이 불운한 집 주인은 무슨 연유였는지 이 75달러를 내지 않아 소방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어 그만 집을 잃고 만 것이다. 자신의 집에 물을 뿌리지 않자 집주인이 얼마든지 돈을 내겠다고 사정을 해도 출동한 소방수들은 막무가내로 그 집을 제외한 그 주위에만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웃고 넘길 수 없는 이런 한심한 일이 실제 있었다 하니, 앞으로 지방정부의 재정위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공공서비스의 부재나 정책결정을 우리 동포사회에 어떻게 반영시키고 해결해야 하는지도 관심을 가져봐야 할일 일 것 같다. 터무니없는 가설이겠지만, 예산부족으로 소방서 혹은 경찰서 몇개가 문닫거나, 주중 며칠은 서비스를 안한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끔찍한 일이다.
DMV(차량 등록국)가 토요일을 휴무로 하더니 주중에도 하루 쉬기 시작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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