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먹영혼의 청진기

2010-10-16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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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진찰을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환자의 표정과 피부색 등을 눈으로 관찰하는 시진, 병력을 물어보는 문진, 몸을 두드려보는 타진, 아픈 부위를 만져보는 촉진, 그리고 들어보는 청진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자 의원이 여자 환자를 함부로 만질 수 없어 손목에 실을 매어서 실을 통한 느낌으로 촉진을 했다니 옛날 의원들의 노력에 감탄을 한다.

청진은 문진을 한 다음, 환자의 상태를 귀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으로 청진은 히포크라테스가 환자의 몸에 자기의 귀를 대 체내의 소리를 직접 들어본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청진기가 나온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 내과의사 라에네크는 1816년 어느 날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아이가 판자를 못으로 박박 긁으면 반대편에 있는 아이가 판자에 귀를 대고 듣고, 또 긴 나무막대를 서로 귀에 대고 재잘거리며 웃는 것을 보고 환자의 몸에 귀를 대지 않고도 몸속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심장이 안 좋다며 찾아온 환자의 심장부위에 종이로 만든 원통의 한쪽 끝을 대고 다른 한 쪽 끝에 그의 귀를 갖다 대었더니 심장소리를 훨씬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라에네크는 이 발명품에 그리스어로 ‘가슴을 본다’ 는 뜻의 ‘stethoscope’ 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진기는 심장의 박동이 만들어 내는 심장음, 호흡을 할때 폐에서 나는 수포음이나 휘파람 소리를 잡아냄으로써 폐렴, 천식, 심장질환을 알아낼 수 있다. 장의 움직임도 청진기로 들을 수 있다. 장의 연동운동이 항진되거나 저하된 소리를 통해 장이 막혔다든지, 장에 염증이 있어 장이 움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아주 세밀히 배꼽 주위를 귀 기울여 들어보면 신장으로 가는 혈관이 좁아져 생기는 혈액의 소용돌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멋진 청진기를 처음 가졌던 때가 생각이 난다. 목에 걸어보기도 하고 빙빙 돌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장에서 어떤 소리가 날것인지 잘 모르거나, 무슨 소리를 들을 것인지 마음속으로 준비하지 않고 환자를 청진할 때는 전혀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즉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듣고자 하는 소리만을 청진기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적용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대화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로만 듣고 마음에는 담아 두지 않았다는 것을 환자 진료를 시작한지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빈번히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내 마음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후 여러 경험을 통해서 인간은 눈과 귀와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꺼내지 못하는 가슴의 깊은 울림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칫 우리는 들리는 소리만 듣는다. 또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이 있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야만 진정한 친구나 의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현대인들이 진정한 대화 상대가 없어 마음의 고통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말로 하지 않는 마음의 소리까지 서로 들어줄 수 있다면 우리의 괴로움은 쉽게 나눠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가을을 귀로 듣는다고 했다.

“가을은 가장 먼저 내 귀로 다가온다/ 귀뚜리가 맑은 소리로/ 새벽잠을 깨우니까. …중략…

그때 정적을 깨는 새소리에 화답하듯/ 소슬바람이 분다/ 먼바다의 파도 소리로/ 숲 속의 나뭇잎들을 떨구고/ 더 숨죽여 귀를 멈추면/ 산과 산이 손뼉을 치듯/ 노을을 향해 어둠을 합창한다. //자연을 보라/ 자연의 소리를 들어 보라/ 귀로 듣는 가을, 거기 내 하나님의 음성이 숨어 있음을’ <박이도 ‘귀로 듣는 가을’>

남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을 나 또한 갖기를 원한다. 눈과 귀와 온 마음으로 아픈 사람의 소리를 듣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깊은 괴로운 마음을 영혼의 청진기로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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