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의 변
2010-10-06 (수) 12:00:00
변만식 기윤실 이사
연륜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나이 든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 갖고 있던 욕망이나 책임감 그리고 자존심 같은 거추장스러운 왕 모래들이 쑥 빠진 요즈음에는 작은 팩에 필요한 것 몇 개 담아 여행이라도 떠날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된다. 홀가분한 기분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독신인 나로서는 사람보는 눈에도 나이테만큼이나 철이 들어 인간관계 형성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노릇이다.
빨간 신호등도 다 같이 건너가면 무서울 것 없다 듯이 또래끼리 어울리면 신이 나고 만나면 반갑다. 평화의 시기보다도 전쟁으로 지새운 날들이 더 많았던 우리 세대. 좁은 땅 떵어리에 숨통이 막히고 가난이 지겹기에 잔득 부푼 풍선 같은 꿈 하나만 갖고 해외로 뛰쳐나와 이곳 미국땅에 발 붙인지도 어언 40여년이 지났다.
실시간에 세월은 가고 세상은 무섭도록 변해 버렸다. 그리도 신기하던 칼라 TV며 재산목록에 까지 올랐든 프리미움이 달린 전화기하며 합승을 탄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교통수단은 어느덧 자기운전 자가용차로 바꿔 타게 됐다. 위성으로부터 연락 받은 GPS라는 방향제시기가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길 안내를 해주는가 하면 아이폰 혹은 아이패드라 일컫는 성냥갑 모양새에 손을 대면 판도라 요술 상자로 돌변하여 오만가지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전화기나 TV 그리고 컴퓨터마저도 멀지 않은 장래에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될 것이라 한다.
음식문화는 또 어떠한가. 동서양의 식품들이 퓨전된 메뉴는 화학방정식의 잣대로 영양가를 따져 가며 먹고들 있으니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분에 넘치는 사치와 호화판 생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공허감은 떠날 줄을 모르고 있다. 화려한 연회장에 불은 꺼지고 하객은 썰물처럼 떠나 버린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허드레와도 같은 허탈과 외로움. 백년해로라는 말도 하나의 바람일 뿐 어느 부부도 준비, 땅! 하고 같은 시간에 죽어 갈수는 없으니 한쪽은 남아 쓰라린 외로움의 신산을 맛보게 된다.
시인 이외수는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요 막상 그대가 성인의 반열에 이른다 하더라도 우리 곁을 떠날 법이 없느니라” 하고 그의 시 ‘뼈저린 외로움’에 담고 있다. 가을이 오고 날씨는 스산한데 요즘 들어 우편 부고가 부쩍 늘고 있다.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 따라 들려오는 예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것이 많도다.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를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있게 하리라.”
그리스도가 간지 2010년. 그는 아직도 온 인류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우리의 죽음을 이토록 평화와 자비로 위안 하여주고 영원한 안식처로 안내해 준 자 예수 말고 또 어데 있는가. 죽음의 세계도 우리 다 같이 건너가면 무서워 할 것은 없다. 이 밤이 새고 새 아침이 오면 해는 또 다시 동에서 솟아올라 쨍하고 생명의 빛을 비춰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