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팬다의 용틀임

2010-09-2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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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다는 중국 사천성 대나무 숲에서만 자란다. 온몸이 둥글둥글 하고 귀여운 팬다는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자 모택동이 한 쌍을 선물로 주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링링과 싱싱으로 불리는 한 쌍의 팬다가 워싱턴 DC 국립 동물원에 전시된 첫날 2만 명, 첫 해 110만명이 이를 보러 왔다.

팬다 인기가 치솟자 너도나도 팬다 한 마리만 달라고 중국 정부에 사정하기 시작했고 중국 정부는 배짱을 튕기며 이제는 빌려주기만 하고 있다. 한 마리 대여료가 1년에 100만달러며 외국에 간 팬다가 새끼를 낳으면 중국 정부 재산이다. 팬다로 버는 돈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팬다가 먹는 음식의 99%는 대나무다. 식물 중 가장 영양가 없는 음식을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팬다는 하루 종일 20~30 파운드의 대나무를 씹어야 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이다. 겉보기에는 귀엽지만 팬다는 엄연한 곰이다. 성질이 나면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람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마구 할퀸다.


그런 의미에서 팬다는 중국의 적절한 상징이다. 미국 중국학의 대가 존 페어뱅크는 ‘중국’이라는 책에서 중국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은 많은데 땅은 없는 것”이라고 썼다. 중국 문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국인들은 노동 집약적인 쌀농사를 1년에 두세 번씩 지으며 높은 수확을 올렸고 이로 인해 인구는 계속 늘어났다.

중국 전체 넓이는 미국과 맞먹지만 북쪽과 서쪽은 사막 아니면 산이다. 중국 인구의 대부분이 동쪽과 큰 강 인근에 집중돼 있는 농지 주변에 살고 있다. 이 좁은 땅에서의 1년 농사가 풍작이냐 흉작이냐가 중국인의 운명을 결정하며 풍흉작 여부는 비가 어느 정도 오느냐가 좌우한다. 평소에도 간신히 농사지을 정도의 비밖에 오지 않는 중국 북부의 경우 가뭄이 들면 이는 곧 재앙이다. 지난 2000년 동안 중국 역사상 1,900번의 가뭄이 있었다고 한다. 땅은 귀하고 사람값은 싼 것이 중국의 변함없는 현실이다.

거기다 중국은 역사 시작 이래 끊임없이 외침과 내란에 시달렸다. 가장 무자비한 몽골 침입 전 1억 2,000만에 달했던 송나라 인구는 원나라가 세워진 후 6,000만명으로 줄었다.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 때는 2,000만명이 사망했다. 20세기 중반 일본의 침략으로 역시 2,000만명이 죽었고 중화 인민 공화국 수립 이후 모택동이 대약진 운동을 한다고 하다 수천 만 명이 굶어 죽었다.

공화국 수립 직후 티벳을 점령해 100만명을 죽였고 6.25때는 중공군을 보내 모택동 자식을 포함 역시 수십 만 명이 죽었다. 1989년 천안문 광장 학살 사건 때 수천 명의 학생을 탱크로 깔아뭉갠 것은 이처럼 사람 죽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오랜 전통의 표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고 자존심이 강하며 18세기 이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중국은 지난 200년간 온갖 내우외환을 겪으며 3류 국가로 전락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30년 동안 경제 개혁에 성공하며 올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된 중국은 아시아의 종주국으로 옛 영화를 되찾기로 작심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첫 번째 본보기로 일본이 걸려들었다. 분쟁 지역인 센가쿠(혹은 댜오위다이) 열도에서 조업하던 중국 선장을 잡고 줄다리기를 하던 일본이 중국의 보복 조치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한 것이다. 센가쿠 열도가 원래 누구 땅이었느냐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누가 이를 차지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가 포인트다.

모든 영토는 원래 주인이 없다. 차지할 실력이 있는 자가 주인인 것이다. 100년 전 강한 일본이 힘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 연고 없는 한반도를 집어삼켰듯이 남북한의 국력이 약해지면 중국은 한사군을 거론하며 한반도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이번 센가쿠 분쟁은 중화 패권주의 시작의 신호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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