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욕망보다 강한 시샘

2010-09-2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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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나를 채우는 시샘은 그나마 밤이 있어 조금은 무사하다.
내일은 내일의 시샘이 있어서 흐르는 시간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밤이 앗아가 버린다.
때론 가질 수도 있고 손에 잡히기도 하는 시샘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터무니없는 크기로 내 자신에게 상해를 입히는 피의자가 되기도 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헛손질만 번잡이 되풀이 되는 내 시샘.
백 년이 넘었다는 고가(古家)에 간 일이 있다. 주인은 이미 세월을 등에 지고 돌아앉았고 지금의 주인은 여기 서 있는 바로 나.
산비탈을 훑고 지나간 태풍은 고가에 붙어 있는 외양간을 무너뜨렸고 한쪽으로 쏠려 내려앉은 기왓장은 물 흐르듯 비스듬하게 정열 되어 있다.
두 해 전 여름에 보았던 이 집은 일 년 내내 머릿속에서 내게 맞는 기억으로 짜 맞추어 졌기에 도착하자마자 그 기억에 색깔을 진하게 입히려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틀러진 빗장문의 부엌을 거쳐 뒤뜰에 서 봤다.
아... 맞아 ! 이 이끼냄새. 하늘로 난 빽빽한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달콤하고 향긋한 바람 냄새. 내 팽개쳐진 깨진 옹기들의 자연스러운 정취 속으로 댓바람은 청량하게 육신에 붙은 수억의 세포 속으로 가득히 채워졌다. 또 내 시샘이 발동을 건다.
다 내꺼 였으면. 산속 깊은 골속에 몇 백년간 서있던 고가의 모든 것이 내 것이었으면.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내꺼. 뒤뜰의 돌담도 내꺼. 부엌의 커다란 가마솥 아궁이도 내꺼. 외양간의 구멍 난 여물통도 내꺼.
다 가지고 싶어. 기왓장 한 장까지도. 그 집을 뒤로하고 앉아서 맞이하는 바람도 다 내꺼였으면...
마당가 울타리에 앉아 머위를 뜯고 탱탱해서 터질 것 같은 개 복숭아를 따 단물 흘리며 베어 먹고. 가지고 온 막걸리 따서 한 입 가득 나발 불고.
도라지 무침을 한 손으로 널름 집어 먹었다. 뭐든지 먹고 싶고 허기가 졌다. 그 집 황토벽의 맛도 혀를 대고 핥고 싶었다. 높은 부엌 천정의 그을림 탄 맛도 먹고 싶던 걸.
으음... 내가 그 집에 산다면 난 걸레를 야무지게 빨아 무릎을 꿇고 삐걱거리는 마루를 닦을 거고. 밥솥 아궁이 솔가지로 눈물 흘리며 불을 땔 거고. 뒷밭에서 딴 애호박 썰어 들기름에 부쳐 손님을 접대할 거고. 손님상엔 소박한 푸성귀를 미안해하듯 호들갑스럽게 장만하여 열 살 넘은 된장을 밥솥에 얹어 호박잎 쪄 올릴 거다.
가을이 되면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하나도 안 쓸어버릴 거고. 겨울이 되면 눈 덮인 천하를 내려다보며 뒹굴고 호령할 꺼다.
가질 수 없어서 더 샘나는 고가의 풍채는 너무나 당당해서 오늘 내 가슴속에 우뚝 서있다. 상상의 내가 그래서 오늘밤은 시샘할 겨를 없이 바쁘다.
갓 캐내온 감자를 껍질 안 벗기고 삶아 반들거리는 식탁위에서 시골스럽게 먹고 싶다.
고가의 마루 쪽에 앉아 먹으면 더 맛있을 거라고 투덜대면서...
석양에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고가(古家)를 살짝 싸안는다.


이봉호
수필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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