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추억

2010-09-26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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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미 /애나폴리스, MD

아주 가까운 옛날 1950년대 60년대 나의 젊은 시절. 겨울밤 길거리엔 리어카에 땅콩장수, 오징어 구어 파는 사람, 도라무통으로 군고구마를 구어 파는 사람, 엿을 목판에 담아 지게에 지고나와 파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극장구경을 가면서 땅콩 오징어 군밤을 사가지고 들어가 먹으면서 영화구경을 하던 시대였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 일 년 정도하고 산기슭에 조그마하고 아담한 한옥집으로 분가를 했다.
겨울에, 그 겨울 늦은 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갔더니 시아버님께서 지게지운 엿장수와 함께 오신 것이었다.
목판의 엿을 몽땅 사 오신 것이었다. “복 받고 잘살라고.” 그날 밤 지게지운 그 사람, 엿목판, 그리고 나의 시아버님 나에겐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추억과 그림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 그때 당시 브리테니카 백과사전 판매원이 시아버님 회사에 왔을 때 나에게(며느리)에게 사주셨다.
그리고 시아버님께서는 낚시를 좋아 하셔서 강이 있는 시골에 별장을 지어 놓으시고 이런저런 농사, 과일나무를 심으셨는데 딸기밭도 있었다. 나는 딸기밭이 있어서 좋다고 하였더니 다음해에는 딸기밭을 넓혀 놓으셨다.
그리고 강가에는 모래사장이 아니고 벽돌만큼 큰 돌멩이들이 많았다. 나는 돌멩이들이 좋다며 이것으로 돌담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버님이 덤프 추럭하는 사람을 시켜 돌들을 아마도 2~3차 정도 집근처에 실어다 놓으셨다.
난 이런 시아버님이 너무나 고맙고 행복해서 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아버님과 그 세대는 거의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도 늙어 70이 다가왔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구나 생각이드니까, 이제부터는 할 수 있는 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 살다보니 물건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물건도 없앨라고 드니까 물건에게도 미안하고 슬픈 생각도 드니 이 무슨 마음일까? 버릴 것은 바리고 기증할 것은 하고 남 줄 수 있는 것은 주고 팔수 있으면 팔고, 그런데 사진 처리는 어찌해야 할지 생각 중이다. 어렵다.
그리고 더 어려운 것은 브리테니카 사전이다. 남 주지도 어쩌지도 못하겠다. 그래서 남편에게 “나 죽으면 나 화장할 때 함께 태워 줘.” 그래 보았다. 그만큼 시아버님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나이다.
어차피 다 정리는 못 할 게다. 하지만 할 수 있을 만큼은 정리를 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나그네처럼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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