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석의 빨간 원피스

2010-09-2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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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정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추석은 ‘가윗날’이라 부른다. 가윗날에는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서로 만나 하루를 즐기는데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즉 반보기라 한다. 오늘날도 민족대이동이라 할 만큼 몇 천만 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 만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날이다.
이맘때가 되면 어릴 적의 잊혀지지 않는 일이 생각난다.
나의 어머니는 개성분으로서 근검절약이 투철하신 분이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유일하게 옷 한 벌 새것으로 입는 날이다. 어머니는 추울 때도 입으려면 바지와 스웨터를 사야한다고 하시고 나는 빨간 원피스의 주름치마를 입겠다고 실갱이를 했던 때가 있었다.
간신히 어찌어찌해서 원피스를 사게 되었는데 정말로 어머니의 말씀대로 추석이 지나고 나면 추어져서 입을 수가 없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고집을 피워서 쌀쌀한 날씨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다니느라 나의 종아리가 얼마나 추웠던지 모른다. 그 종아리가 지탱이 되어 지금까지 삶에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때의 기억을 하면 추석에 묘한 기분으로 설레는 날이 되곤 한다. 옷을 하나 새것으로 입으면 그것으로 만족이었고, 다른 때와 달리 그저 많은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그 시절이 추억이 되어 그리울 때가 있다. 이 먼 이국땅에도 추석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그날만큼은 떡집의 송편이 불티나게 팔린다. 어릴 적 추억의 송편은 솔잎에 묻혀있던 그윽한 송편 냄새… 깨가 들어가 고소한 것과 밤을 으깨어서 넣은 것 등등 그 다음에 참기름을 살짝 발라서 그 고소한 냄새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고향의 냄새로 기억되고 있다.
옆집의 중국 할아버지도 해마다 가윗날에는 달 모양의 월병(月餠)을 만들어 가지고 오시는데 한국인의 송편처럼 얼마나 맛이 기가 막힌지 모른다. 이때 만큼은 둥근 보름달을,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고 본다. 이내 얼굴도 보름달 같다. 세월에 묻혀 달처럼 돼버린 세월의 흔적을 보면서, 빨간 원피스의 아이는 어느새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어른으로(?) 되어 추석의 의미를 되새기며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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