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너무 일찍 기척을 하며 다가왔다. 언뜻 스쳐 지나는 한줄기 바람, 소슬한 청량함으로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구만리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멀어지고 지친 바람의 정적만이 오롯이 담겨 늦 포도송이 사이로 일러준 깨달음이 있었다.
젊은 날의 사랑은 "한여름 밤의 꿈"일지 모를 일이다. 핑크빛 사랑의 아름다음을 전제로 하지만 그 대상은 하릇 밤 사이에도 분별없이 옮겨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천사, 나의 분신"이라고 말한 연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주옥 같은 명곡을 쏟아냈던 베토벤과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천국 길잡이로 삼아 신곡을 쓴 단테처럼 사랑을 가슴에 품고 품어 승화 시킨 그들의 사랑은 위대함의 극치를 이룬다.
쪽빛 햇살을 드린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국화 꽃 송이를 뿌려놓은 가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9월 중순경부터 봉우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하얀 국화를 마련하여 정성들여 보살핀다. 국화가 질 때까지, 하루를, 한 달을, 계절을 아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산 정약용의 국화 사랑은 유별났다. 국화는 여느 꽃보다 늦게 피고 오래 견뎌 내면서 향기가 그윽하다.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며 싸늘하지 않는 기품을 지녔다.
다산은 특히 그윽한 가을 밤 국화 그림자를 사랑하며 흠뻑 취했다. 다산은 정배지 다산 초당의 고독의 밤을 국화를 보면서 달랬던 것이다.
9월에 국화꽃 사랑은 그리움으로 역역하다. 사랑과 젊음을 다시 되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사랑하던 기억들이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하고 싶은 간절한 기원이다. 가슴속에 수놓은 아름답던 순간들이 오래 동안 같이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안주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