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라는 이름은

2010-09-0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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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한국에서 건너 온 따끈따끈한 얘기라며 미국 사는 남자들도 개를 한 마리씩 꼭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니, 그녀의 말인즉 옛날에는 이사 갈 때 냉장고를 가져가서 남자들이 냉장고 문만 꼭 잡고 있으면 함께 갔는데, 요즘은 냉장고를 버리고 가니 개를 꼭 껴안고 있으면 틀림없이 새 집에 함께 이사 가게 된다는 것이다.

조크라지만 씁쓸하다. 어쩌다 우리 남편들의 위상이 이렇게 흔들리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경제권이 흔들리면서 아버지의 존재도 조금씩 흔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은 가장(家長)이라는 이름을 항상 기억하고 커다란 멍에를 어깨에 짊어지더라도 휘청거리며 매일의 생활을 이어간다. 남편은 일하는 사람, 돈 벌어오는 기계쯤으로 가족들이 생각해도 그에게는 가정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요, 낙원인 것을 가족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오래전 우리 집에서 우리는 커피 잔만 달랑 들고 커피를 마셨어도 아버지 커피는 예쁜 잔에 받침까지 놓고, 혹시라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다시 부엌으로 가서 닦아서 두 손으로 쟁반에 받쳐 들고 그렇게 아버지를 어려워하지 않았던가.

밥을 떠 담아도 항상 아버지 주발이 우선이었고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까지 가족이 모두 기다렸다 아버지가 식사를 시작하시면 우리도 모두 식사를 시작했다.

나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들의 책임은 언제라도 어깨가 휘어지게 무겁고, 그래도 생전 불평 한 마디 없이 참으시며 말없이 가족을 돌보시던 사랑에 가족 전체가 감사하고 공경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아버지들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수고한 아버지들의 경제력이 흔들리고, 나이 들어가며 머리마저 희끗희끗해 질 때 식구들마저 아버지를 외면한다면 얼마나 허전하고 슬픈 일인가.


이혜란 /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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