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미꽃과 호박꽃

2010-09-0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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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이래로 인간은 남녀를 구분하여 꽃과 나비로 불리어져 왔다.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것이 당연지사요 꽃 또한 나비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한 논리다. 단지 무슨 꽃이냐 무슨 나비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세상의 많은 여성들이 자기를 장미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 장미이기를 소원한다. 장미꽃에도 그 종류가 일만 오천 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 어느 것일런지 모르지만 그저 장미로 여겨지기만을 바란다.
‘클레오파트라’가 자기 자신을 장미로 비교했듯이 나 자신도 장미로 믿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꽃 중에 꽃이라는 장미! 그 아름다움 못지 않게 풍겨주는 향기는 더욱 매력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장미를 노래하고 찬양한다. 이에 비해 호박꽃은 어떠한가?
내 평생에 수많은 여성들을 대해 보았지만 ‘나는 호박꽃이 좋아, 호박꽃이 되고 싶어’ 하는 여자는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호박꽃을 찬양하는 노래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침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는 한 송이 노란 금빛의 호박꽃을 자세히 들여다 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넓지 않은 집 앞 정원에 매년 피는 호박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집 주인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로 좋은 꽃은 호박꽃이란다. 처음 한 두 해는 넝쿨이 잔디밭까지 기어나 귀찮다고 투덜대는 사람이 이제는 아침 저녁 물을 열심히 주며 아침이면 저 호박꽃 좀 와서 보라고 성화다. 색깔도 좋을 뿐 아니라 널찍하고 풍족한 꽃송이는 푸근한 어머님 가슴과도 같고 장모님의 자상하셨고 풍족한 모습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 넓고 큼직한 꽃에 찾아드는 벌 또한 여유 있는 듬직한 모습을 한 벌들이 아닌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호박꽃을 예찬하기에 나도 몇 날을 두고 아침 저녁으로 호박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날이 갈수록 그이의 이론에 접근하고 있는 나를 느꼈다. 세상만사 생각하기에 달렸다고 말을 하지 않는가?
몇 년 전 나는 그이로부터 육십 송이 장미를 받은 일이 있었다. 한 두 송이도 아닌 육십 송이의 붉은 장미 선물은 정말로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매일 아침 몇 송이의 호박꽃을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장미꽃인가, 호박꽃인가? 잠깐 동안은 호박꽃이였다가 집안에 들어오면 생각이 바뀌어 그래도 장미꽃이겠지 하며 혼자서 웃는다. 시각의 문제요, 양심의 문제다. 생명의 문제일수도 있다. 양심 없는 지식은 사람들을, 혹은 나 자신을 속이기 쉽고 허탈감마저도 가져다준다. 양심으로는 호박꽃이 되고 싶고 시각으로는 장미가 되고 싶은 성격을 가진 생명체! 이것이 현재의 나이며 많은 여성들이다. 생명은 창조되어지는 미술, 음악과 같은 예술이며 각 생명이 지니고 있는 성격은 작품이다.
누구든 생명이 있는 자는 편견을 저버리고 자기 자신을 좋은 예술품이 될 수 있도록 조각하며 살아야겠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감정을 억제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편견을 줄이자. 기도 해보자. 생명체를 중히 여겨 보자. 그곳에 마음의 행복이 자리를 잡으리라.

정영희
중앙결혼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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