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해천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소설 속의 인물이다.
2064년에 태어난 그는 35세가 되던 해에 ‘돌아오지 않는 배’로 명명된 우주선을 타고 홀로 우주 항해에 나섰다.
지구에서 가져간 씨앗을 어느 행성에다 심어놓고 그는 92년 간의 삶을 마쳤다.
우주선을 탈 때 그는 법적으로 독신이었고 사실적으로도 독신이었다.
그 탓으로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우주선에 승차하는 것에 응모를 하고 그 적격자로 택해진 것인지 모르겠다. 과학도인 그로서는 진정한 의미의 우주인이 되는 것을 꿈 꿨으니까. 그 소설에서 나타나는 속도는 주로 광년으로 표기된다.
1광년은 1년 동안 빛이 나가는 거리인 3만 킬로미터를 나타내는 거다.
100억 광년에 해당되는 명왕성, 해왕성, 천황성 등이 이웃 동네를 표시한 듯 나타난다. 물론 지금 나는 전혀 흥미롭지 않은 과목인 과학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60년을 혼자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의아심을 가질 뿐이다.
나야 실연당한 기억이 없으니 그 사람 마음을 차마 느끼지는 못한다.
그 사람은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 후 병으로 죽었다.
실연을 했나 안 했냐는 내 삶을 주장하는 스토리가 아니다.
사랑이 내 삶을 주장하지 않은 이유는 그 누구도 나를 사랑 안 한 때문인 거로 생각할 뿐이다. 누구의 표현처럼 돌과 같은 나도, 과연 60여년의 시간 동안 홀로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의 일인 거로 결론이 선다.
내가 선연히 혼자 지낼 수 있다고 주위 사람에게 나타냄은 내 허영심이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허영심이란, 또 다른 비굴한 겸손인거다.
현대에는 태반의 사람들이 고독에 놓여 지낸다고 한다.
그래도 그 고독한 사람들 주위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함은 축복인 거로 생각된다.
그 소설에서처럼 아무런 생명체가 없는, 있어봤자 기계의 움직임만이 있는 중에서 과연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하는 것이 그 소설을 읽고는 생긴 의문이었다. 우리의 생명체 결정체는 영원한 침묵 속에 놓여 고독과 벗하는 순간까지라도 우리는 고독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지라도 고독은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