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지 않은 길

2010-08-13 (금) 12:00:00
크게 작게

▶ 이봉호 수필가, MD

공원의 잔디밭은 초록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황홀감의 연속이었다. 눈높이에서 바라 볼 때 너무 매끄럽게 보여서 가까이 다가와 그 위에 둥글고 싶은 욕구를 느끼다가도, 가까이 다가가면 잔디 포기와 포기 사이로 바로 들여다보이는 흙과 오물 때문에 그냥 앉을 수가 없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아주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막상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의 낱개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들이 얼마든지 많다. 메밀밭의 흰 꽃들이 그렇고, 야산마다 다투어 핀 망초 꽃들의 모습이 또한 그렇다.
내가 평생토록 걸어 온 길에도 수많은 갈래 길이 있었고 그 갈래 길이 있을 때마다 밤잠을 설쳐 가며, 많은 고민을 해서 두 갈래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나는 가끔 “내가 가지 않은 딴 길을 갔더라면”하고 후회를 할 때가 많이 있다.
내가 가지 않은 그 길은 지금 내가 걸어 온 길보다 다 훌륭한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왔으며 경험해보지 않은 행복스런 길을 더듬어 상상해 보기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나를 걱정해 주는 여러 친구는 “자네가 가지 않은 길이 더 나쁜 길이 될 수도 있었다”는 말에도 공감을 일으킨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어떤 길일까? 실제로는 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 본 길.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다시 가 보고 싶은 길. 그러나 한 번 선택한 길 외에 다른 길은 다시 갈 수 없는 길.
이 생각에 몰두하다 보니 갑자기 미국 캘리포니아 주 출신의 거장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이 머리를 스친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 서운한 마음으로 나 오랫동안 그 곳에 서서 /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 더 나은 듯도 했습니다(중략).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발자국이란 없고 / 두 길은 마침 / 똑 같은 그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을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 인생길은 한 번 가면 그만이기에 /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 흐른 뒤 /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 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는가? 내 인생은 매우 편안하고 행복하였다고 결론짓자고 하니 나는 틀림없이 잘 닦아진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걸었음이 증명되지 않는가.
‘프로스트’의 시처럼 인생길은 한 번 가면 그만이기에 다시 가 보기 어려운 길임을 이 시점에서야 통감할 수 있었으니, 가지 않은 다른 길을 다시 원점에서 걷는 다는 것은 단연히 시간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이미 와있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