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닭고기와 인종차별

2010-08-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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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룡 변호사 훼어팩스 카운티 광역교육위원

에인즐리: “너, 또………”
며칠 전에 에인즐리가 필자 집에 놀러왔다. 에인즐리는 필자의 둘째 아들인 우영이의 절친한 고교 친구이다. 이제 가을이면 대학교 2학년이 되는 두 녀석이 친하게 된 것은 토마슨 제퍼슨 과학고(TJ) 농구팀에 같이 처음으로 지원하였던 9학년 때 부터다. 에인즐리는 TJ에 몇 안 되는 흑인 학생이었다. 둘 다 농구를 좋아했는데, 아담한(?) 사이즈의 우영이는 팀에 가입하게 되었으나 오히려 키 큰 에인즐리는 그러질 못했다. 같이 운동은 못 하게 되었으나 둘은 그 후로 상당히 가까워졌다.
고교 졸업 후 각자 다른 대학으로 진학한 이후에도 계속 연락하며 방학에 집에 돌아오면 자주 만나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며칠 전에 둘 사이에 위의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필자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며 열심히 놀고 난 다음이었다. 배가 고파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중국음식을 주문해 먹기로 하였던 것이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우영이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닭고기를 얘기했다. 그런데 그게 에인즐리에게는 또 장난치는 것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아니, 우영이의 평소 장난기를 알기에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흑인들에게는 ‘닭요리’에 관한 노예 시대 때부터의 선입견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경제적 이유로 닭요리를 자주 먹어왔던 흑인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영이와 에인즐리는 워낙 친한 사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면 다분히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문화 사회에서 살면서 자칫 자기도 모르게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전혀 의도치 않았는데 상대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때가 있을 수도 있다.
타인종과의 접촉 과정 중의 불화를 무조건 인종차별 시각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본다.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성급하게 화를 내는 것보단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보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스스로 나는 절대로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고의성 없는 상대의 작은 실수나 오해에 대해서도 웃으며 넘어가는 아량을 가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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