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쪽과 세쪽 그리고 행복

2010-08-02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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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희 중앙결혼정보센터

온 식구들이 둥근 밥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가 나에게 돌아왔다. 먼저 엄마의 포문이 열렸다.
“XX 두 쪽 밖에 없는 놈이 무엇이 그렇게 좋아 자주 만나 희희덕 거리느냐”는 말씀에 오빠, 언니들이 한마디씩 힘을 보태니 나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항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꾹 참고 저녁을 마친 후 내 방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려니 조금 전 들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 공부는 커녕 글자가 두 줄 세 줄로 보이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다음날 학교에 간 적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어떻게 내 남자 친구 두 쪽 밖에 없는 것을 아셨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친구를 만나서 여러 얘기 끝에 “우리 서로 아무리 좋아해도 결혼까지는 안될 것 같아...” 하니 이 친구는 깜짝 놀라며 왜 그러느냐고 되물었다. 할 수 없이 며칠 전 집안 식구들이 모인 가운데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니 그제서야 이해한 듯 조용해지며 상당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쓸쓸하게 헤어졌다. 이 삼주 쯤 지나서 밖에서 만나자는 메모를 주기에 지정된 장소엘 가보니 이미 나와서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언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그가 지난 번 헤어질 때와는 달리 더 밝아 보이니 조금은 무엇인가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 조금 지나서 이 친구 왈 “지난 번 그 소식을 듣고 집에 가서 자세히 보니 내 것은 두 쪽이 아니라 세 쪽이더라구요!” 하면서 집에 돌아가거든 엄마한테 두 쪽이 아닌 세 쪽이라고 말씀드리라는 아주 자신만만한 말투였다. 이어 그는 “이제 그 문제는 완전 해결이니 우리 공부나 열심히 해서 졸업 후 일년 쯤 지나서 결혼을 하자”는 아주 당당하게 프로포즈까지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만나면 즐겁고 포근함을 주는 그이기에 그날도 즐거운 마음으로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시간에 나는 그 친구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상상하며 엄마한테 말씀드렸다. “그 친구를 만났는데 자기는 xx가 두 쪽이 아니라 세 쪽이래요” 했더니 오빠, 언니들이 밥을 먹다말고 방바닥에 뒹굴며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잘못됐구나 직감하고 나는 다시 확실하게 외치듯 말했다. “그 남자 친구의 xx는 두 쪽이 아니라 세 쪽이래요! 엄마한테 그렇게 전하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결혼하는데 문제 삼지 말라구요!”
독일 문호 괴테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기 자신에 결여돼 있는 것을 자식을 통하여 실현해 보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경건한 소원이다’ 라는 말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부모가 충분치 못해 부잣집 자식들처럼 돌보아 주지 못했으니 두 쪽, 세 쪽을 넘어선 여유있는, 자랑스런, 훌륭하고 건장한, 마음에 여유가 있고 풍족한 신발의 남자를 데려오라는 얘기었을 것이다. 어른들의 시각으로는 모자랐지만 내 마음의 잣대로는 기준을 흘러 넘치는 좋은 친구였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만나면 즐겁게 헤어질 때면 아쉬움이 항상 있어 다음 만남을 마음 속에 약속하며 전차를 타면 전차가 안보일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배웅하는 모습이 손자를 본 지금까지 눈에 아롱거려 감사에 감사를 더한다.
행복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감사일 것이다. 감사가 잉태하여 행복을 낳아 주는 것 아닌가?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쳤다. 인도 불교의 거장 용수는 ‘감사를 아는 자, 이것을 사람이라 하고 감사를 모르는 자, 이것을 짐승이라 일컫는다’라고 했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를 해보자. 원망스러울 때 감사해 보자. 억울할 때 감사해 보자.
두 쪽 밖에 없다는데 그 곳에 감사가 있었기에 세 쪽의 행복이 자리를 잡았으리라.
‘감사는 우리가 당연히 지불해야할 의무다. 아무도 감사를 남에게 기대할 권리는 없다.’ 불란서의 철학자요 문학가인 룻소의 말이다. 한 시간을 감사하면 한 시간이 행복하고 하루를 감사하면 하루가 행복하고 일생을 감사한다면 평생을 행복하게 지낼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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