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을 보는 남자

2010-07-1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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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이
30개인 줄 일찍 알았으면
서툰 눈도 좀 고치며 진작 철이 들었을 테고
쉰넷에 파 한 단 값 안
시장 길이 선생이네.

수족이 늘 찬 아내
꼬랑꼬랑 아픈 날은
여자 누운 남자 살림, 안 봐도 다 훤한 것
부엌도 빨랫거리도
물정 어둔 나를 닮네.


채천수 (1957 - )



빨랫감은 쌓이고 부엌은 엉망인, 여자 누운 살림이 안 봐도 훤하다. 룸싸롱에서 양주가 한 병에 얼마인지 아는 대신에 그 술값으로 파 2,000단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내가 그리 자주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책했을 것만 같은 쉰넷의 남자가 남 같지 않다. 시장 길이 선생이네, 물정 어둔 나를 닮네, 하는 결구가 시조의 여운으로 입가에 오래 맴돈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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