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자서전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한번은 러브조이(Owen Lovejoy)라는 링컨 대통령의 참모가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중요한 명령문건을 가지고 국방장관 에드윈 스탠턴(Edwin Stanton)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명령서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해 버렸다. 그러자 러브조이가 엄숙하게 말했다. “어째든 이것은 대통령의 명령입니다.” 그러자 스탠턴은 “아니 정말 링컨이 이런 맹꽁이 같이 같은 명령을 내렸단 말이요?”라고 이렇게 되물었다. 참모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스탠턴은 불같은 성격을 누르지 못하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분명 천치바보 맹꽁이지!”라며 소리쳤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참모는 국방장관실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링컨에게 보고했다. 보고를 다 들은 링컨은 “정말 그 친구가 나더러 천치바보 맹꽁이라고 하던가?” “예, 그것도 여러 번 그랬습니다.”라고 참모가 대답했다. 링컨은 한참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얼굴을 쳐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탠턴이 정말 나더러 천치바보 맹꽁이라고 했다면 아마 정말 그게 사실일거야. 그 사람 말은 대개 맞으니까…그리고 그 사람은 성질이 좀 급한 것이 탈이지 속에 없는 말은 안 해. 내가 직접 가서 만나보고 내게 무슨 탈이 생겼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겠어.” 얼마나 의연한가. 얼마나 인격적 고수(高手)인가. 얼마나 여유 있는 큰 리더의 모습인가. 링컨의 내면은 화강암처럼 단단하면서도 겉은 솜털처럼 부드럽고 온유했다. 문자 그대로 그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리더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들은 스탠턴은 링컨으로부터 큰 감화를 받았다. 그리고 링컨을 보좌하는 측근 각료가 되었다.
훗날 링컨이 남부의 암살범이 쏜 총에 맞아 운명하는 순간 그의 침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제 링컨은 모든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라고 제일 크게 애도하였다. 어떤 라이벌까지도 끌어안고 동지로 만든 링컨은 과연 큰 리더였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인간관계의 대가였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따라 올수 없는 인격적 고수였다. 천안함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느끼는 소감이 있다. 사건이 일어난 후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것은 내 책임 입니다.”라고 말하는 지휘관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까 국민들의 불신임을 받고 필요 없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리더란 누구인가. 인격적 고수를 리더라고 한다. 왜 고집쟁이 스탠턴이 링컨에게 감동을 받고 그를 리더로 섬겼나. 링컨의 인격이 그의 인격보다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설사 부하의 실수였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책임지는 리더가 진짜 리더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하는 인격의 고수가 참 리더다. 이런 리더 밑에 있는 팔로어는 행복하다. 거기서 자발적 충성심이 솟아난다. 잊지 말라. 인격의 최고봉은 책임감이다. 책임감이란 남의 허물과 약점을 대신 끌어안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남의 허물과 약점을 용감하게 책임질 때 그 사람은 그때부터 리더다. 어린 소년 다윗이 이스라엘의 리더가 된 것은 사울 왕을 위시하여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두려워하는 골리앗을 책임지려고 앞장섰을 때부터다.
모세가 리더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돌판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보니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합심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절하고 있었다. 이것을 내려다본 하나님이 진노하여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나와 이렇게 간청한다.
“슬프도소이다 이 벡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 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2:31-32)라고 대신 책임을 지고 나섰다. 하나님은 백성의 허물과 약점을 대신 끌어안는 모세의 책임감을 보시고 크게 감동하셨다.
그때부터 모세를 이스라엘의 리더로 인정해 주셨고 어디를 가나 그를 지켜주셨다. 책임지는 리더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신을 사람에게 연결시키지 않고 전능자 하나님에게 연결시킨다. 둘째, 중보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본다. 셋째, 문제를 보지 않고 해결의 가능성을 바라본다. 넷째, 하나님의 헤세드를 믿고 기도하고 매달린다. 이게 책임지는 리더의 참 모습이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가. 바다같이 넓은 사랑으로 우리의 허물과 약점을 전부 끌어안아 주신 예수님의 높은 인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 당신은 예수님처럼, 모세처럼 사람을 감동시키는 리더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사랑의 책임감으로 가득한 인격의 고수(高手)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