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가…주범은 자동차 보험료

2024-12-23 (월)
크게 작게

▶ 신차 가격 인상에 보험료↑
▶ 팬데믹 이후 보험료 51% 올라

▶ 잦은 사고와 수리비 급등
▶ 가입자 줄면 더 오를 수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물가…주범은 자동차 보험료

인플레이션이 속 시원히 해소되지 않는 이유가 자동차 보험료 급등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자동차 보험료는 팬데믹 이후 무려 51%나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로이터]

인플레이션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 최근 소비자 물가 지수는 2%대의 안정적인 수준이지만‘연방준비제도’(Fed) 목표치인 2%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유는 치솟는 보험료, 그중에서도 자동차 보험료 급등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하락세였던 인플레이션은 가을에 접어들자 반등했다. 이 기간 자동차, 주택, 건강 보험 등 전반적인 보험료가 급등하면서 전체 물가 상승분의 15%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자동차 보험료는 두 자릿수 비율로 치솟으며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경제학자들은 치솟는 자동차 보험료를 잡지 못하면 연준의 금리 정책이 힘들어질 것으로 경고했다.

■인플레 주범 지목된 자동차 보험료

최근 발표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전달 상승폭인 2.6%보다 약 0.1%포인트 올랐으나 전문가들의 기존 예상치와 부합하는 수치다. 경제학자들은 자동차 보험료가 급등하지 않았더라면 전반적인 물가 상승률은 약 2.37%로 연준의 목표치인 2%에 조금 더 근접할 수 있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의 조시 허트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자동차 보험료가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물가 상승률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소비자 물가지수를 구성하는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안정됐지만 자동차 보험을 포함한 주택 보험, 건강 보험 등 각종 보험료는 고집스럽게도 떨어지지 않는 항목이다. 이중 자동차 보험료는 다른 보험에 비해 전체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다. 자동차 보험의 경우 전국 대부분 주에서 의무적으로 가입을 요구하기 때문에 소비자가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고정 비용이다. 게다가 차량이 1대 이상인 가정은 보험료도 배로 뛰기 때문에 대부분 가구의 등골을 휘게 하는 비용이다.

■팬데믹 이후 51% 급등

자동차 보험료는 코로나 팬데믹 발생 직전인 2019년 12월 이후 무려 51%나 급등했다. 자동차 보험료는 구매 가능한 차량 공급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데, 차량 제조업체들이 가격이 비싼 고급 모델 생산을 늘리고 저렴한 가격의 모델 공급을 줄이면서 자동차 보험료가 덩달아 뛰었다. 새로운 기술 덕분에 차량이 안전해졌지만, 수리 부품 가격과 수리 인건비 등이 오른 것도 자동차 보험료 상승 원인으로 지목된다.

‘보험정보연구원’(III)의 로레타 워터스 대변인은 갈수록 빈발하는 자동차 사고를 보험료 급등 원인으로 꼽았다. 워터스 대변인은 “부주의한 사고가 급증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라며 “보험 청구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 등 법률 비용 상승이 크게 늘어 보험사로서도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사고 기록 없어도 올라

시애틀에 거주하는 카일 모리슨(52) 씨는 최근 날아온 자동차 보험료 고지서를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2017년형 기아 포르테를 운전하는 모리슨 씨의 12월 보험료는 전달 130달러에서 200달러로, 무려 70달러나 올랐다. 운송 계약자로 일하는 모리슨 씨는 자동차 사고 한번 없는 깨끗한 운전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새 동네로 이사한 것 때문에 자동차 보험료가 인상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보험 에이전트는 보험료가 오른 것은 이사와 무관하고 전반적인 보험료 인상 추세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개인 운전자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해명이 아닐 수 없다.

연준도 자동차 보험료가 물가를 낮추려는 정부의 노력에 장애물로 남아 있다고 지적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지난 3월 상원 의회에 출석해 “자동차 보험, 주택 보험 등 각종 보험료가 지난 수년간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자동차 보험업계에서는 보험료 상승 폭이 최근 몇 년간 차량 가격 상승 폭 대비 낮아지는 추세로, 곧 안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최근 발표된 소비자 물가 보고서에도 이 같은 기대감이 이미 반영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11월 자동차 보험료 상승률은 연간 대비 약 13%로 10월 상승률인 14%에서 약 1%포인트 떨어졌다.


그러나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트럼프 차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시행되면 자동차 보험료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경제학자가 많다. 트럼프 당선인은 불법 이민자와 마약 유입을 막지 않으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압박한 바 있다. 경제연구기관 RSM의 조 부르수엘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는 또다른 자동차 보험료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결국 전반적인 물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놨다.

■‘차라리 운전 안 하겠다’

자동차 보험료 고공행진에 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운전자가 늘고 있어, 다른 운전자의 보험료 인상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보험 조사 위원회’(IRC•Insurance Research Council)에 따르면 2020년부터 무보험 운전자가 늘기 시작해, 무보험 운전자 비율은 2019년 전체 운전자 중 11.6%에서 2022년 14%로 높아졌다.

대일 포필리오 IRC 회장은 “최근 자동차 보험료 급등 현상이 무보험 운전자 급증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나날이 치솟는 자동차 보험료 때문에 차량 운전을 포기하는 운전자도 늘고 있다. 애리조나주에서 모기지 대출 업체 계약 관리자로 일하는 샌디 보코비치(59)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피닉스에 거주하는 보코비치 씨는 차량 2대와 주택 보험을 포함한 이른바, ‘패키지 보험’에 가입하고 있는데, 올해 연간 보험료가 7,000달러에서 1만 2,000달러로 무려 5,000달러나 인상됐다. 그녀 역시 자동차 사고 기록이 없고 주택 보험 청구 기록도 없는데 보험료가 이렇게 많이 오른 것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보험 에이전트에게 더 낮은 보험료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현재 가입된 보험이 가장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애리조나주에서 31년 동안 살았지만, 보험료가 이렇게 많이 오른 것은 처음”이라는 보코비치 씨는 그동안 정든 집을 팔고 차 없이도 생활할 수 있는 뉴욕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