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청포도

2010-07-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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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1904 - 1944)


7월의 시다. 청포도의 푸른 물에 함뿍 적셔진 두 손을 하얀 모시 수건에 닦는 정경이 떠오른다. 평화롭고 정갈하면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식탁이다. 그러나 이 시는 안타까움과 슬픔도 함께 가져온다. 이 시를 쓴 이육사 시인이,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는 손님과 함께 이 식탁을 나누지 못하고, 해방을 눈앞에 둔 1944년에 옥사하셨기 때문이다, 모두가 변절하고, 의를 지키기가 어려웠던 시절, 감방을 17번이나 드나들면서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친 이 시인의 이름 앞에 늘 ‘민족시인’이란 존칭이 함께 하는 이유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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