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디 늙으면 보자!”

2010-06-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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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한적한 도시. 로키산맥의 품안에 폭 안겨 있는 이 작은 도시는 빨리만 움직이려는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잠시 이야기를 좀 하잔다. 못 이긴 척, 나는 거칠게 흐르는 개울 가장자리에 잔뜩 움츠리고 있는 바위에 엉덩이를 살짝 걸쳤다. 마음을 풀지 못한 바위의 찬 기운이 느껴졌다. 푸근한 쉼터 역할을 해야 할 넙적한 바위가 냉기를 흩뿌리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계곡이 봄맞이를 위해 겨울 내내 입고 있던 눈옷을 한꺼번에 훌훌 벗어 던진 것이다. 약이 바싹 오른 개울은 얼굴까지 벌개가지고 가장자리에 늘어 서 있는 바위들 사이로 심통을 부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심기가 불편한 개울의 불평을 듣고 있을 때, 저만큼 앞에서 한 동양인 부부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처럼 급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나이는 쉰 후반이 될까말까 했다. 비교적 군살이 없이 호리호리한 남편은 뭐가 그리 바쁜지 한적한 오솔길에 새초롬히 서 있는 민들레 꽃씨가 흔들릴 정도로 오른 팔을 홰홰 저으며 걸었다. 왼팔은 뒷짐을 진 채 말이다. 그의 뒤를 약간은 통통하고 작달막한 부인이 허리에는 여행용 까만색 전대까지 차고 허겁지겁 따르고 있었다. 가까이서 부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곁을 지나는 부부의 발자국 소리가 나른하게 퍼져 있는 늦은 봄기운을 흔들어 깨웠는지 갓 날개짓을 시작한 아기 새들이 포르륵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는다. 그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요즈음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울리고 있는 한 풍자가 떠올랐다.
한 노인정에 육십, 칠십 그리고 팔십 대 노인 셋이 모였다. 누구한테 얻어 터졌는지 눈탱이가 밤탱이 되어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도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육십 대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쩌다가 그 모양이 되었수? 그러자 그 노인이 대답했다. 끼니때가 다 되어도 밥 줄 생각을 않은 할멈한테, “밥 안 줘?”했더니 이렇게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칠십 대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소? 그러자 칠십 대 노인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누라가 옷을 곱게 차려 입고 외출을 서두르기에, “어디 가?”하고 물었더니 그만 “퍽!”하고 주먹이 날아왔다고 했다.
이 두 노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팔십 대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그 정도면 맞을 만도 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두 노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팔십 대 노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얻어 터졌수?”했더니 팔십 대 노인은 정말 억울해서 못 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고 일어나 아침에 눈을 떴더니 눈 떴다고 이렇게.....!”
이 풍자를 들으며 사람들은 웃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서걱거린다. 평생을 돈 벌어들이는 부품처럼 자리 매김을 하던 남편이 토사구팽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생리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성은 남성화가 되고 남성은 여성화가 된다고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배려!
부부로 살아가면서 때론 차가 씽씽 달리는 대로를 걷기도 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걷기도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서로에 대한 배려의 부재 때문에 이런 풍자가 횅횅하는 것은 아닐까. 아내들이 이를 앙다물며 종종 속으로 부르짖는 구호가 있다. “어디 늙으면 보자!”
급물살로 흐르는 개울은 요란하기 마련이고, 그런 물가에 놓여 있는 반질거리고 넙적한 돌에 온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깃들지 않은 우리의 인생도 덜거덕거리기는 매 마찬가지고, 그렇게 덜거덕거리는 소음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반려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반려자의 눈을 보라. 그 눈빛이 행여 이 구호를 외치고 있지는 않는지, “어디 늙으면 보자!”

이성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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