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접시꽃이 피었다 지면

2010-06-2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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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미 수필가 /포토맥, MD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 참으로 짧습니다 ? 접시꽃 당신 중에서-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 뿐일 때도 / 우리들은 온몸 던져 싸우거늘 /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
암병동 중에서-
도종환 시인의 숱한 싯귀절 중에서 위의 귀절들을 붙잡고, 지난 한 달간 참 많이도 울었다. 내 앞으로 여름 장마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그리고 연분홍 치마같은 접시꽃이 한 번 더 피었다 질 때 쯤이면 맞닥뜨려야 할, 이별의 예감 때문이었다.
말기암 선고를 받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갈아 엎고 씨를 뿌린 묵정밭에는 이제 꽃이 피었는데, 또 드문드문 씨앗도 여물어 가는데 아버지는 떠날 준비를 하신다고 한다. 언제까지나 우리들 곁에 비스듬한 산비얄처럼 묵묵히 서계실 줄 알았는데, 철없는 우리들이 어설프게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고 수런거리는 일을 지켜보아 주실 줄 알았는데, 바람처럼, 아버지는 그렇게 떠날 채비를 하신다고 한다.
초등학교 교단에서 사십 년 넘는 세월을 보내시고 퇴직한 아버지의 두번째 직업은 중풍 드신 어머니의 뒷수발을 하시는 일이었다. 칠 년 세월, 반 편의 육신만 남아 있는 어머니의 곁을 하루도 비어 보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우셨는지는 어느 날 훔쳐본 베란다의 빈 소주병들이 대신 말해 주었다. 슬그머니 바람 찬 뒷베란다로 나가셔서 졸금졸금, 소주를 따라 마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뵌 적이 있다. 당당하던 어깨는 어디로 가고, 가을 운동장을 호령하시던 그 목청은 어디로 가고 술 한 잔을 털어 넘기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고도 초라했다. 공벌레처럼 웅크리고 잠이 드신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베란다로 나가 더러는 비어 있고 더러는 채워져 있는 이홉들이 소주병을 확인하는 내 가슴으로 북풍이 지나갔다. 삶의 뒤안으로 나 앉은 아버지를 닮은 이홉들이 소주병과 그 아버지의 독한 슬픔을 닮은, 무색투명한 액체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쓸쓸히 돌아섰다.
아버지는 내게 추억을 찾아가는 길목에 펼쳐보는 옥편이었다. 글을 쓰다가 아슴프레하고 분명치 못한 기억이 있으면 또르르,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 전화를 받고, 이것저것 설명해 주시는 걸 즐겨하셨다. 할머니는 왜 하얀 감자꽃을 따내셨느냐, 질문하면 열매를 실하게 맺기 위해서라는 짧은 대답 대신 별 모양을 한 감자꽃의 생김새에서부터 감자 긁던 반달놋수저로, 배고프던 날에 감자를 먹고 누워서 듣던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보너스 설명이 더 길으셨다.
날씨가 많이 춥쥬? 인사를 건네면 이까이 꺼는 추운 게 아니라시며 영하 3도 이하로 내려가야지만 조개탄 무쇠난로를 때던 가난했던 그해 겨울의 학교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다. 이어서 솔방울, 민둥산이 된 내력, 상수리를 따내기 위해 나무에 상처를 내던 이야기까지 아버지의 보너스 설명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계속 되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노곤하게 잠겨들면 이제 그만 주무시라 하여도 늘 하나도 졸립지 않다시던 아버지, 일찍 자면 새벽에 잠이 깨져서 고통스럽다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진통제에 취해 밤이고 낮이고 잠만 주무신다 한다.
이제 나는 그 옥편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미 통화하던 전화선은 빈 집만 울리고 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지셨다. 유월의 초입, 나무와 꽃들은 지치도록 푸른 물길을 끌어올려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울 때 아버지의 혈관은, 아버지의 장기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병원에 누우신 채 연신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반복하시는 아버지, 무엇이 그리 미안하시다는 건지 혼곤한 잠의 나락으로 떨어지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씀을 길게 끌고 들어가신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자전거를 타신다. 아버지의 자전거는 버들가지 피어 있는 봇도랑길을 달리고, 뿌연 먼지 속의 신작로를 달리고, 플라타너스 그늘진 보도블럭길을 달린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자전거를 타시고 학교에 가시고 또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자전거 뒷칸에는 언제나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실려 있었다. 시험지가 실려 있었고, 신문지로 싼 옥수수빵이 실려 있었고, 가난한 학부형이 실어준 기름 젖은 어묵꾸러미가, 축축한 생태 한 코가 실려 있었다.
“백마가앙 다알빠아메 물새가 우우-우울어…” 슬픈 백마강의 황혼 한 오라기를 싣고 돌아오시기도 하시던 아버지의 비틀걸음을 따라온 그 자전거는 늘 초가의 대문간이나 빨간 양옥의 처마 밑에 세워져 있곤 했다.
어지러운 수면에서 깨어날 때마다 수족이 불편한 아내를 걱정하시며 다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시는 아버지는 참 좋은 선생님이셨다. 궁벽한 시골학교의 교사 시절에는 문맹의 아이들을 사랑의 등잔 밑으로 불러 들이셨고 도시로 전근을 가셔서도 늘 소외되고 가난한 아이들의 가정을 찾아 다니셨다. 산골의 아이들에겐 농사를 짓더라도 글은 깨우쳐야 한다며 참참이 지게 받쳐 놓고 막대기로 글자를 써보라고 당부하시고, 어머니껜 아무개 어머니가 하는 채소전, 아무개 아버지가 하는 생선전에 꼭 들러 팔아줄 것을 당부하셨다. 노년에도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통로에서 함부로 뛰는 아이들을 붙잡고, 또 공중목욕탕에서도 비누칠할 때 수돗꼭지를 잠그지 않는 사람들을 참견하시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곤혹스러워 하시기도 했다. 세상이 변해간다고, 너도 나도 변해간다고 같이 따라가서는 안 된다던 아버지, 세상엔 아버지가 참견하실 일이 천지인데 아버지는 이제 그만 떠나셔야겠다고 하신다.
지난 한 달간 글을 쓰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썼던 글을 보내드렸지만 급격히 떨어진 시력 때문에 이미 지난 봄부터 네 글을 읽을 수 없었노라는 때늦은 아버지의 고백을 듣고 또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 없어도 좋은 글을 계속 쓰라시며, 소소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소소한 행복을 주는, 좋은 글쟁이가 되라고 당부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상을 탔던 ‘가을’이란 동시의 한 귀절을 기억해 내시기도 하며 너는 나의 어여쁜 첫딸이었노라고 고백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과 어깨를 겯고 나온 책을 몇 권 보내드렸더니 병실에 들르는 손님들에게 그 책을 내미실 때마다 희미하게 화색이 돌기도 하신다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나는 두렵다. 그리고 또 어떻게 이별을 해야 할지, 처마 밑 아버지의 빈 자전거를 회상하며 살아갈 다음 계절, 그리고 또 그 다음의 계절이 나는 벌써부터 두렵기만 하다.
오늘,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워싱턴에 오신다. 옥수수밭에 바람이 부는,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계절을 그분은 어떻게 견디셨을까. 그분을 만나 뵙고 나면 나는 이제 막 접시꽃이 피기 시작할 한국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갈 것이다. 아니, 이별을 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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