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면제(睡眠劑)

2010-06-2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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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욱 /정신과 의사, MD

우리문화에 수면제라는 대목은 상반되는 느낌을 가져온다. 일종의 필요악(必要惡)이라 할까. 잠이 오지 않고 괴로운 밤에 조그마한 약 한 알로 숙면을 취하고 다음 날 맑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고마울 대가 없을 것이다.
한편 우리 문화에 수면제라고 하면 음독자살의 도구로 생각하게도 한다. 수면제는 자살목적으로 이용된 약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유명한 사람, 특히 문학가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것을 이용하여 자의로나 타의로 스스로의 목숨을 종결하였기 때문에 낭만적인 연상을 하는 수도 있겠다. 술은 처방 없이 복용할 수 있는 수면제이다. 그러나 처방수면제와 술을 섞으면 이것이 살인 무기 같은 위험성이 있다.
현대의 수면제 역사에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1950년 전까지는 루미날(Luminal)이니 세코날(Seconal)등 페노바르비탈 계통의 약들로서 모름지기 현대적 안전한 약품으로 등장 했으나 이것들은 곧 중독성 습관성 문제로 서서히 퇴장을 하게 되었다. 20세기 전반의 문학가나 예술가들 중 이것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50년 초에 탈리오마이드(Thaliomide)라는 아주 인기가 있은 복용하기 좋은 수면제가 나와 구미(歐美)에서 대 유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임산부가 복용했을 때 태아에 심한 기형이 일어나는 것이 곧 판명되어 전 세계에 판매 중지가 되었다. 라이프(LIFE)잡지에 대서특필의 기사와 함께 실려진 기형아들의 처참한 사진을 보는 것은 너무도 눈물겨웠다. 그 후 여러 가지 벤조디아제핀(Bezodiazepine)계통의 수면제가 나왔는데 그중 아주 효과가 있다고 생각 되었든 것이 80년대에 나온 할시온(Halcion)이었다. 수면에 효과가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개운해서 좋다고 하였으나 곧 이것이 기억상실과 정신착란이 와서 환각이 오거나 망상이 와서 이상한 행동을 하며 자살이나 타살을 하는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대개의 경우 본인은 그런 자기 행동에 대해서 전혀 기억을 못한다. 많은 나라에서 이 약품의 판매를 중단 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서는 제약회사와 가장 조심스럽다는 식품의약청(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이 협약을 해서 최소양의 정제(錠劑)만 팔도록 하였다. 이것은 눈 감고 아웅 하는 기만에 가까운 처사다. 한 알이 모자라서 두 알을 복용하면 그런 수단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그 후에 비슷한 약품들이 나왔다. 그중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 최근에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것 들이다. 그 부작용을 자세히 보면 할시온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그 발생 빈도가 낮더라도 그런 부작용은 용납 할 수 없다. 새벽에 몽유병 환자처럼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도 몇 시간 후에 그 것을 전혀 기억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무슨 약을 취침 전에 복용하고 무슨 일이 있었건 간에 그 다음 날에는 전혀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본인은 아무 일이 없었든 것으로 여기고 누구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가 치료하는 환자의 90%이상이 불면증을 호소한다. 불면증은 그 원인을 찾아 치료 하여야 할 것이며 수면건강(Sleep Hygiene)을 철저히 지키면 대개가 해결이 되며 꼭 약품으로 수면을 해야 할 경우에 안전한 약품들이 많이 있다. 그것들은 가격도 싸며 기억상실, 환상, 망상, 폭행, 자살 등의 정신착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없다.
이런 약들은 수면제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나 대개의 의사들이 그 수면효과를 알고 있다. 환자들은 텔레비전 광고를 보고 의사를 찾아와 그것을 처방해 달라고 하니 의사들은 마지못해 청을 듣는다. 위정자들이 이런 것에 대한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본인들이 허가를 준 약품에 가타부타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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