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지수, 불행지수

2010-06-0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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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한 모습의 할머니 한 분이 비좁은 전철에서 이리 저리 떠밀리고 있다가 잘못해서 들고 있던 통을 놓치고 말았다. 이때 이상한 한약 냄새 용액이 사람들 옷과 신발에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몇 사람은 할머니를 보고 화를 내며 “할머니, 젊은 사람 같았으면 가만 안 뒀을 거야”라고까지 얘기했다.
할머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소리 내어 통곡했다. “아이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아픈 우리 아들 먹이려고 어렵게 한약을 20만원이나 주면서 샀는데, 이걸 다 쏟았으니 우짜나...” 그러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당신들 우째 그라요, 쪼깨만 비켜 달라고 허는 소리 못 들었는강...” “아이고, 아이고” 할머니의 울음이 계속되자 어디선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욕설이 들렸다. “이 할망구야, 시끄러워, 여그가 당신네 집 안방인 줄 알아, 그래 그게 그리 귀한 아들 먹일 약이면 돈 좀 들여 택시를 탈 일이지... 아, 대중교통은 왜 타고 난리야”라고 했다.그리고 이어서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같은 아주머니 목소리가 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 우리 남편 입원비 50만원을 병원 앞에서 쓰리 당했지만 할망구처럼 그렇게 울지는 않았네. 우리 남편 지금 병원에서 얼마나 아픈가 얘기 좀 해 줄까.. 지금 병원비 못 구하면 병원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단 말이야”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서럽게 울던 할머니가 울음을 뚝 그쳤다. 할머니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첫째 한약을 쏟은 자기 슬픔은 20만원인데 저 사람은 50만원 어치 슬픔을 당했으니 나 보다 더한 사람도 있구나 해서 위로 보너스.
두 번째는 오래 앓아온 우리 아들 하루아침에 한약 한 재 더 먹인다고 벌떡 일어날 일도 아니요.저 사람은 남편이 병원에 있다면 중병일수도 있고 또 죽을 수도 있으니 그래도 내가 좀 낫구나 하는 위로 보너스. 셋째는 아들이 중요 하냐 남편이 중요하냐를 생각해보니, 만일 저 아줌마한테 아이라도 몇 명 있으면 남편이 병원에 있다면서 시간을 다투는 병일수도 있을 테고 거기다 남편이 죽는다면 아이들 데리고 살 일이 막막해 지겠지. 그래 저 여자 보다는 내가 나은 형편이구만, 할머니는 아주 급하게 그 생각들을 하면서 울음을 그쳤던 것이다. 내 설움과 남의 설움을 지수로 비교해 보니, 나는 그래도 행복한 지수 쪽에 더 가까이 가 있다고 스스로 위안해 보는 것이다.
물론 내가 손가락을 베었다면 동네 사람 다리 기브스 한 것 보다 더 아픈 것 같고 속상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든 이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이며,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밝게도 또 어둡게도 보이는 것이다.
행복지수는 계속 느끼고 부를수록 더 가까이 다가온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도 많고, 세계도처에서 재앙으로 매일 사람도 죽어간다. 오늘은 한번쯤 소리 내어 크게 외쳐 보자. “우리 식구들 최고!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세 번만 크게 소리내 외쳐 보면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혜란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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